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영조실록』 48년 임진(壬辰) 12월조에 ‘미호집약간권장우가(渼湖集若干卷藏于家)’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772년(영조 48) 저자 생존시에 이미 『미호집』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0권 10책. 활자본. 규장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200여수, 권2에 상서(上書) 23편, 서계(書啓) 3편, 의(議) 2편, 권3∼12에 서(書) 474편, 권13에 서(序) 7편, 기(記) 1편, 제발(題跋) 27편, 권14에 잡저 31편, 혼서(婚書) 3편, 찬(贊) 3편, 명(銘) 1편, 권15에 묘지명 15편, 권16에 신도비명 4편, 비명 3편, 권17에 묘갈명 11편, 권18에 묘표(墓表) 23편, 권19에 행장 8편, 권20에 제문 35편, 고문(告文) 7편, 애사 1편, 전(傳)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개 사람들과 창수(唱酬: 시가나 문장을 지어 서로 주고받음)한 것과 우회(寓懷: 뜻을 둠) 또는 영물(詠物)이다. 상서는 「사지평서(辭持平書)」 등 모두 소의 형태로 사직소가 대부분이다. 의(議) 가운데 「현빈궁상대비전복제의(賢嬪宮喪大妃殿服制議)」는 상복에 관해 논한 것으로 저자의 예설의 일단을 나타내는 글이다.
서(書)에는 저자의 종장(宗丈)인 김시관(金時觀)과 성리설(性理說)에 관해 논란한 것, 유척기(兪拓基)와 예설에 대해 논한 것, 송명흠(宋明欽)·임성주(任聖周)·김종후(金鍾厚)·이완(李浣)·홍대용(洪大容) 등 당시의 많은 학자·문인들과 주고받은 서한들이 있다. 이 서한들에는 경의(經義)·심성(心性)·이기(理氣)·예설·사론(史論) 등에 관한 내용이 많아, 훈고학(訓詁學) 및 성리학에 관한 저자의 학문적인 영역이 광범위했음을 알 수 있다.
저자의 사상과 이론은 저자의 학통과도 관계가 있다. 저자는 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송시열(宋時烈)·권상하(權尙夏)·이간(李柬)의 학통을 계승해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서는 이간의 낙론(洛論)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으며, 예론은 김장생·송시열의 예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잡저 가운데 「잡기(雜記)」·「도곡수기(陶谷隨記)」 등은 독서를 하다가 학문에 관해 생각나는 대로 그때그때 기록한 것이다. 「명덕설의문(明德說疑問)」·「중용귀신설(中庸鬼神說)」·「심성기질설시이민철(心性氣質說示李敏哲)」 등은 유가의 경전이나 성리설에 관해 논변한 내용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