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임혜련"
검색결과 총 23건
조선후기 제23대 순조의 장남 익종의 왕비.
신정왕후 (神貞王后)
조선후기 제23대 순조의 장남 익종의 왕비.
정순왕후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왕비로서 계비이다. 1745년(영조 21)에 태어나 1805년(순조 5)에 사망했다. 영조비 정성왕후 사후 15세의 나이로 영조의 계비가 되었다. 노론 벽파계 집안 출신으로, 국혼 후 오빠 김귀주를 중심으로 큰 세력을 형성했다. 정조가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순조가 11세로 즉위하자 대왕대비로서 수렴청정을 했다. 수렴청정 중에 노론 벽파 심환지를 영의정에 임명한 후 정조의 측근들을 내치고 신유사옥으로 남인 청류들을 대거 숙청함으로써 정조 재위기의 개혁 정치를 원점으로 되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순왕후 (貞純王后)
정순왕후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왕비로서 계비이다. 1745년(영조 21)에 태어나 1805년(순조 5)에 사망했다. 영조비 정성왕후 사후 15세의 나이로 영조의 계비가 되었다. 노론 벽파계 집안 출신으로, 국혼 후 오빠 김귀주를 중심으로 큰 세력을 형성했다. 정조가 즉위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순조가 11세로 즉위하자 대왕대비로서 수렴청정을 했다. 수렴청정 중에 노론 벽파 심환지를 영의정에 임명한 후 정조의 측근들을 내치고 신유사옥으로 남인 청류들을 대거 숙청함으로써 정조 재위기의 개혁 정치를 원점으로 되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조선전기 제13대 명종의 왕비.
인순왕후 (仁順王后)
조선전기 제13대 명종의 왕비.
『지영록』은 조선 후기의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익태의 시 · 제문 · 기행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이익태는 1694년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 업무 수행에 필요한 자료가 부족하여 관청의 등록 등을 참고하여 제주도를 알리고자 편찬하였다. 자신이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여정과 재임기간 중의 진상과 같은 업무와 행적도 기록하였다. ‘탐라십경’ 등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관과 지명에 대해 소개되어 있다. 특히 제주 해역에서 발생한 외국인 표류 사건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해양 교류사, 표류민 송환 체제, 외국인과의 의사소통 등을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한 자료이다.
이익태지영록 (李益泰知瀛錄)
『지영록』은 조선 후기의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익태의 시 · 제문 · 기행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이익태는 1694년 제주목사에 부임하였다. 제주목사 업무 수행에 필요한 자료가 부족하여 관청의 등록 등을 참고하여 제주도를 알리고자 편찬하였다. 자신이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여정과 재임기간 중의 진상과 같은 업무와 행적도 기록하였다. ‘탐라십경’ 등 제주도의 아름다운 경관과 지명에 대해 소개되어 있다. 특히 제주 해역에서 발생한 외국인 표류 사건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해양 교류사, 표류민 송환 체제, 외국인과의 의사소통 등을 파악하는 데 매우 유용한 자료이다.
조선 후기에, 퇴계학파의 학통으로 ‘영남삼로(嶺南三老)’로 불린 학자.
박손경 (朴孫慶)
조선 후기에, 퇴계학파의 학통으로 ‘영남삼로(嶺南三老)’로 불린 학자.
조선 후기에, 『향약집설』, 『동국통지』, 『수양만설』 등을 편찬한 학자.
박주종 (朴周鍾)
조선 후기에, 『향약집설』, 『동국통지』, 『수양만설』 등을 편찬한 학자.
공빈추숭은 광해군의 사친 공빈 김씨를 공성왕후로 추숭한 사안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광해군은 선조의 후궁 소생이며, 둘째라는 정통성의 결함을 가지고 세자로 책봉되었다. 광해군은 선조의 대상이 끝난 후에 공빈 김씨를 왕후로 높여서 자신이 후궁 소생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공빈 김씨는 1613년(광해군 5) 공성왕후로 추숭되었다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다시 공빈으로 추삭되었다. 공빈추숭은 유교적 질서를 크게 어그러트리는 사건으로 국왕의 권위와 주동자들의 도덕성에 큰 흠이 되었다.
공빈추숭 (恭嬪追崇)
공빈추숭은 광해군의 사친 공빈 김씨를 공성왕후로 추숭한 사안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발생하자, 광해군은 선조의 후궁 소생이며, 둘째라는 정통성의 결함을 가지고 세자로 책봉되었다. 광해군은 선조의 대상이 끝난 후에 공빈 김씨를 왕후로 높여서 자신이 후궁 소생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 왕위계승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공빈 김씨는 1613년(광해군 5) 공성왕후로 추숭되었다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다시 공빈으로 추삭되었다. 공빈추숭은 유교적 질서를 크게 어그러트리는 사건으로 국왕의 권위와 주동자들의 도덕성에 큰 흠이 되었다.
수렴청정은 조선시대 어린 왕이 즉위하였을 때 왕실의 가장 어른인 대비(大妃)가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정치제도이다. 수렴동청정(垂簾同聽政)의 줄임말로 발을 치고 함께 정치를 듣는다는 의미이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왕의 어머니가 대신 정치를 하는 섭정(攝政)을 시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녀 간의 내외를 엄격히 구분하여 신하들과 대비가 얼굴을 맞대고 업무를 보는 것을 예법에 어긋났다고 여겼기 때문에 발을 드리웠다. 13세에 즉위한 성종 때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처음 시행하였으며, 모두 7회 시행되었다. 대체로 왕이 20세가 되면 철렴환정(撤簾還政)이라고 해서 물러났다.
수렴청정 (垂簾聽政)
수렴청정은 조선시대 어린 왕이 즉위하였을 때 왕실의 가장 어른인 대비(大妃)가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정치제도이다. 수렴동청정(垂簾同聽政)의 줄임말로 발을 치고 함께 정치를 듣는다는 의미이다. 조선시대 이전에는 왕의 어머니가 대신 정치를 하는 섭정(攝政)을 시행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남녀 간의 내외를 엄격히 구분하여 신하들과 대비가 얼굴을 맞대고 업무를 보는 것을 예법에 어긋났다고 여겼기 때문에 발을 드리웠다. 13세에 즉위한 성종 때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처음 시행하였으며, 모두 7회 시행되었다. 대체로 왕이 20세가 되면 철렴환정(撤簾還政)이라고 해서 물러났다.
조선전기 문신 유희춘이 수령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업무능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하여 1559년에 저술한 지침서. 목민서.
치현수지 (治縣須知)
조선전기 문신 유희춘이 수령에게 요구되는 도덕성과 업무능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하여 1559년에 저술한 지침서. 목민서.
조선후기 문신·학자 홍경모가 우리나라와 청나라의 명승지에 대한 견문록.
관암존고 (冠巖存藁)
조선후기 문신·학자 홍경모가 우리나라와 청나라의 명승지에 대한 견문록.
조선후기 문신·실학자 서유구가 자경하며 경험한 농법을 바탕으로 저술한 농업서.
행포지 (杏蒲志)
조선후기 문신·실학자 서유구가 자경하며 경험한 농법을 바탕으로 저술한 농업서.
동국진체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냈던 18세기에 출현한 조선 고유의 서체이다. 조선이 곧 중화라는 조선중화의식의 영향으로 발현된 조선의 서체이다. 남인 명문가 출신 이서(李?)가 『필결(筆訣)』을 저술하여 창시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전통적인 진체(晉體)를 바탕으로 미법(米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창안한 서체로 옥동체(玉洞體)라고도 한다. 윤두서와 윤순에게 전해졌다가 윤순의 서법을 계승한 이광사에 의해 완성되었다. 서법의 근원에 나아가 서법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시도되었던 우리나라 고유 서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동국진체 (東國眞體)
동국진체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냈던 18세기에 출현한 조선 고유의 서체이다. 조선이 곧 중화라는 조선중화의식의 영향으로 발현된 조선의 서체이다. 남인 명문가 출신 이서(李?)가 『필결(筆訣)』을 저술하여 창시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전통적인 진체(晉體)를 바탕으로 미법(米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창안한 서체로 옥동체(玉洞體)라고도 한다. 윤두서와 윤순에게 전해졌다가 윤순의 서법을 계승한 이광사에 의해 완성되었다. 서법의 근원에 나아가 서법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시도되었던 우리나라 고유 서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고려 후기에, 한림학사,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
백천장 (白天藏)
고려 후기에, 한림학사, 정당문학 등을 역임한 문신.
정의공주는 조선 제4대 세종의 둘째 딸이다.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이다. 세종이 즉위하기 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477년(성종 8)에 사망했다. 안맹담과 혼인하여 4남 2녀를 두었다.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역산(曆算)에 능하였다. 『죽산 안씨 대동보』에 따르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에 변음(變音)과 토착(吐着)을 잘 풀어서 노비를 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불교에 조예가 있어서 소헌왕후와 세종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문수사를 중창하였다. 안맹담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장보살본원경』을 간행하였다.
정의공주 (貞懿公主)
정의공주는 조선 제4대 세종의 둘째 딸이다.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이다. 세종이 즉위하기 전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1477년(성종 8)에 사망했다. 안맹담과 혼인하여 4남 2녀를 두었다. 총명하고 지혜로웠으며 역산(曆算)에 능하였다. 『죽산 안씨 대동보』에 따르면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에 변음(變音)과 토착(吐着)을 잘 풀어서 노비를 상으로 받았다고 한다. 불교에 조예가 있어서 소헌왕후와 세종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문수사를 중창하였다. 안맹담의 명복을 빌기 위해 『지장보살본원경』을 간행하였다.
창빈 안씨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후궁이다. 1499년(연산군 5)에 태어나 1549년(명종 4)에 사망했다. 1507년 궁녀로 입궐하여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를 모시다가 후궁이 되었다. 1530년 선조의 아버지가 되는 덕흥군을 낳았다. 1543년 종3품 숙용이 되었고 정3품 소용의 지위에 올랐다. 중종이 승하한 후 문정왕후의 배려로 계속 궁궐에서 살았다. 성품이 단정하고 온화하여 문정왕후와 사이가 돈독하였으며, 명종과 덕흥군의 아들들과도 관계가 돈독했다고 한다. 1577년에 정1품 창빈으로 추봉되었다.
창빈 안씨 (昌嬪 安氏)
창빈 안씨는 조선 제11대 중종의 후궁이다. 1499년(연산군 5)에 태어나 1549년(명종 4)에 사망했다. 1507년 궁녀로 입궐하여 중종의 어머니 정현왕후를 모시다가 후궁이 되었다. 1530년 선조의 아버지가 되는 덕흥군을 낳았다. 1543년 종3품 숙용이 되었고 정3품 소용의 지위에 올랐다. 중종이 승하한 후 문정왕후의 배려로 계속 궁궐에서 살았다. 성품이 단정하고 온화하여 문정왕후와 사이가 돈독하였으며, 명종과 덕흥군의 아들들과도 관계가 돈독했다고 한다. 1577년에 정1품 창빈으로 추봉되었다.
조선전기 제1대 태조의 첫째 딸인 공주.
경신공주 (慶愼公主)
조선전기 제1대 태조의 첫째 딸인 공주.
조선 전기, 중종의 장인이며,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외조부로 적순부위 등을 역임한 무신.
안탄대 (安坦大)
조선 전기, 중종의 장인이며, 선조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외조부로 적순부위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 중기에, 내의원 의관을 역임하였으며, 허준과 함께 선조를 치료한 의관·공신.
이공기 (李公沂)
조선 중기에, 내의원 의관을 역임하였으며, 허준과 함께 선조를 치료한 의관·공신.
1776년 김홍도가 창덕궁 규장각을 그린 그림.
규장각도 (奎章閣圖)
1776년 김홍도가 창덕궁 규장각을 그린 그림.
김만덕은 조선후기 1795년 흉년과 관련된 상인이다. 1739년(영조 15)에 태어나 1812년(순조 12)에 사망했다. 제주도 출신으로, 상인이던 부친이 풍랑을 만나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죽자 외삼촌 집에 기거하며 어린 나이에 기적에 오르게 되었다. 이재에 밝아 배를 만들어 육지와 미곡 무역을 하며 거상으로 성장했다. 제주도에 흉년이 들자, 1795년에 자신의 재산으로 육지의 곡식을 구매하여 백성들을 구휼했다. 그녀의 선행이 조정에 보고되자 정조는, 출륙하여 금강산 관광과 궁궐 구경을 하고 싶다는 김만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김만덕 (金萬德)
김만덕은 조선후기 1795년 흉년과 관련된 상인이다. 1739년(영조 15)에 태어나 1812년(순조 12)에 사망했다. 제주도 출신으로, 상인이던 부친이 풍랑을 만나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죽자 외삼촌 집에 기거하며 어린 나이에 기적에 오르게 되었다. 이재에 밝아 배를 만들어 육지와 미곡 무역을 하며 거상으로 성장했다. 제주도에 흉년이 들자, 1795년에 자신의 재산으로 육지의 곡식을 구매하여 백성들을 구휼했다. 그녀의 선행이 조정에 보고되자 정조는, 출륙하여 금강산 관광과 궁궐 구경을 하고 싶다는 김만덕의 소원을 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