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임혜련"
검색결과 총 46건
검토관(檢討官)은 조선시대 경연청(經筵廳)에 속한 정6품 관직이다. 경연청에서 경사(經史)의 강론과 토론 등 진강(進講)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검토관은 태조 대에 정4품으로 2명을 두었으며, 세종 대에는 집현전 직전(直殿) · 응교(應敎) 1~2명이 겸직하였다. 예종 대에 경연관이 시강관으로 통합되어 불리게 되면서 관직명이 사라졌다가 성종 대에 다시 설치되어 홍문관 수찬(修撰)과 부수찬(副修撰) 각 2명씩, 모두 4명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 규장각이 설치된 뒤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검토관 (檢討官)
검토관(檢討官)은 조선시대 경연청(經筵廳)에 속한 정6품 관직이다. 경연청에서 경사(經史)의 강론과 토론 등 진강(進講)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검토관은 태조 대에 정4품으로 2명을 두었으며, 세종 대에는 집현전 직전(直殿) · 응교(應敎) 1~2명이 겸직하였다. 예종 대에 경연관이 시강관으로 통합되어 불리게 되면서 관직명이 사라졌다가 성종 대에 다시 설치되어 홍문관 수찬(修撰)과 부수찬(副修撰) 각 2명씩, 모두 4명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 규장각이 설치된 뒤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경빈박씨는 조선 전기 제11대 국왕 중종(中宗) 후궁이다. 중종 반정 후 숙의(淑儀)에 봉작되었으며, 중종의 서장자(庶長子)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를 낳았다. ‘작서의 변’으로 폐서인이 되고, 사사(賜死)되었다.
경빈 박씨 (敬嬪 朴氏)
경빈박씨는 조선 전기 제11대 국왕 중종(中宗) 후궁이다. 중종 반정 후 숙의(淑儀)에 봉작되었으며, 중종의 서장자(庶長子) 복성군(福城君) 이미(李嵋)를 낳았다. ‘작서의 변’으로 폐서인이 되고, 사사(賜死)되었다.
교정청(校正廳)은 조선시대, 서적 편찬 시 검토 및 교정을 위해 임시로 설치하였던 관서이다. 법전이나 왕실 보첩류, 전례서를 비롯한 국가에서 제작하는 서적을 검토하고 교정하는 기능을 하였다. 성종 때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수정 · 간행하며 처음 설치되었다. 선조 때에는 경서교정청(經書校正廳), 선원록교정청(璿源錄校正廳)이 설치되었다. 교정청에서는 국왕의 어제(御製)를 교정하기도 하였고, 광해군대에는 흠경각(欽敬閣) 복원을 위한 교정청도 설치된 바 있다.
교정청 (校正廳)
교정청(校正廳)은 조선시대, 서적 편찬 시 검토 및 교정을 위해 임시로 설치하였던 관서이다. 법전이나 왕실 보첩류, 전례서를 비롯한 국가에서 제작하는 서적을 검토하고 교정하는 기능을 하였다. 성종 때 『경국대전(經國大典)』을 수정 · 간행하며 처음 설치되었다. 선조 때에는 경서교정청(經書校正廳), 선원록교정청(璿源錄校正廳)이 설치되었다. 교정청에서는 국왕의 어제(御製)를 교정하기도 하였고, 광해군대에는 흠경각(欽敬閣) 복원을 위한 교정청도 설치된 바 있다.
대비(大妃)는 조선시대 선왕의 왕비이다. 부군이었던 선왕(先王)이 사망하고 후사왕(後嗣王)이 즉위한 후 왕대비(王大妃)로 존숭되며, 현왕(現王)이 사망하고 다시 후사왕이 즉위하면 대왕대비(大王大妃)로 존숭되었다. 대비는 선왕의 정비(正妃)라는 관계에서 존숭된다. 대개 현왕의 어머니가 대비가 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대비는 자전(慈殿), 자성(慈聖), 동조(東朝)라 호칭하였다.
대비 (大妃)
대비(大妃)는 조선시대 선왕의 왕비이다. 부군이었던 선왕(先王)이 사망하고 후사왕(後嗣王)이 즉위한 후 왕대비(王大妃)로 존숭되며, 현왕(現王)이 사망하고 다시 후사왕이 즉위하면 대왕대비(大王大妃)로 존숭되었다. 대비는 선왕의 정비(正妃)라는 관계에서 존숭된다. 대개 현왕의 어머니가 대비가 되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대비는 자전(慈殿), 자성(慈聖), 동조(東朝)라 호칭하였다.
대사성(大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3품 당상관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장(長)으로 정원은 1명이다. 성균관은 유학(儒學) 교육을 책임지던 기관이었던 만큼 대사성은 문과(文科) 출신이 임명되었다. 대사성은 유생(儒生)들을 지도하고, 성균관 내 행정 업무를 관리하였으며, 관시(館試) 운영에 참여하였다. 또한 문묘(文廟)에서 열리는 석전제(釋奠祭)를 준비하고 아헌관(亞獻官)으로 참여하였다.
대사성 (大司成)
대사성(大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정3품 당상관직이다.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장(長)으로 정원은 1명이다. 성균관은 유학(儒學) 교육을 책임지던 기관이었던 만큼 대사성은 문과(文科) 출신이 임명되었다. 대사성은 유생(儒生)들을 지도하고, 성균관 내 행정 업무를 관리하였으며, 관시(館試) 운영에 참여하였다. 또한 문묘(文廟)에서 열리는 석전제(釋奠祭)를 준비하고 아헌관(亞獻官)으로 참여하였다.
도청(都廳)은 조선시대, 각종 임시적 사안을 관장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설치한 임시 관서의 관직이다. 도제조(都提調), 제조(提調)와 함께 도감의 상층 관직자이며, 제조와 도청을 도청부(都廳部)라고 하였다. 도청은 청요직으로 3사의 전현직 관료가 임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도청은 당상을 보좌하여 실무를 담당하며, 제조의 명을 받아 각방의 낭청을 통솔하고, 업무를 종합하는 역할을 하였다.
도청 (都廳)
도청(都廳)은 조선시대, 각종 임시적 사안을 관장하기 위하여 국가에서 설치한 임시 관서의 관직이다. 도제조(都提調), 제조(提調)와 함께 도감의 상층 관직자이며, 제조와 도청을 도청부(都廳部)라고 하였다. 도청은 청요직으로 3사의 전현직 관료가 임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도청은 당상을 보좌하여 실무를 담당하며, 제조의 명을 받아 각방의 낭청을 통솔하고, 업무를 종합하는 역할을 하였다.
문학(文學)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5품 관직이다. 조선이 건국된 후, 좌우 문학 2인으로 설치되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1명으로 법제화되었다. 이후 겸직으로 겸문학(兼文學) 1명이 증치되었다. 세자시강원의 녹관(祿官)이며, 상번으로 서연에 참여하였다. 문학은 주로 문장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특히 경전이나 서적을 탐구하여 문장을 작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문학 (文學)
문학(文學)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5품 관직이다. 조선이 건국된 후, 좌우 문학 2인으로 설치되었으며,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1명으로 법제화되었다. 이후 겸직으로 겸문학(兼文學) 1명이 증치되었다. 세자시강원의 녹관(祿官)이며, 상번으로 서연에 참여하였다. 문학은 주로 문장과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특히 경전이나 서적을 탐구하여 문장을 작성하는 역할을 하였다.
보덕(輔德)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종3품 관직이다. 1392년(태조 1)에 설치되었으며, 정원은 2명이었다. 세종 대에 1명으로 인원이 축소되었다가 선조 대 이후 겸보덕(兼輔德)이 1명 증치되었다. 1784년(정조 8)에 정3품 당상관으로 승급되었다. 세자시강원의 녹관(祿官)으로 시강원의 상번(上番)이었고, 실무를 총괄하였다. 서연을 담당하여 세자의 교육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였다.
보덕 (輔德)
보덕(輔德)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종3품 관직이다. 1392년(태조 1)에 설치되었으며, 정원은 2명이었다. 세종 대에 1명으로 인원이 축소되었다가 선조 대 이후 겸보덕(兼輔德)이 1명 증치되었다. 1784년(정조 8)에 정3품 당상관으로 승급되었다. 세자시강원의 녹관(祿官)으로 시강원의 상번(上番)이었고, 실무를 총괄하였다. 서연을 담당하여 세자의 교육을 책임지는 역할을 하였다.
보양관(輔養官)은 조선시대에 원자 · 원손의 보양을 담당하던 관직이다. 이들은 원자와 원손의 교육과 보도(輔導), 그리고 보육을 담당하였다. 보양관의 소속 관청은 보양청(輔養廳)과 강학청(講學廳)이었다. 원자 보양관은 정1품에서 종2품의 관원 3명이 임명되었으며, 원손 보양관은 종2품에서 정3품 당상관 2명이 담당하였다.
보양관 (輔養官)
보양관(輔養官)은 조선시대에 원자 · 원손의 보양을 담당하던 관직이다. 이들은 원자와 원손의 교육과 보도(輔導), 그리고 보육을 담당하였다. 보양관의 소속 관청은 보양청(輔養廳)과 강학청(講學廳)이었다. 원자 보양관은 정1품에서 종2품의 관원 3명이 임명되었으며, 원손 보양관은 종2품에서 정3품 당상관 2명이 담당하였다.
빈객(賓客)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2품 관직이다. 세자시강원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여 서연(書筵)을 전담하였다. 빈객은 시강관의 임무를 맡아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주로 겸직으로 임명되었으며, 세자의 스승이었다. 시강원의 고위직으로 운영과 관원 임용에 참여할 수 있었다.
빈객 (賓客)
빈객(賓客)은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2품 관직이다. 세자시강원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여 서연(書筵)을 전담하였다. 빈객은 시강관의 임무를 맡아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주로 겸직으로 임명되었으며, 세자의 스승이었다. 시강원의 고위직으로 운영과 관원 임용에 참여할 수 있었다.
사성(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종3품 관직이다. 성균관의 녹관(祿官)으로 대사성 다음의 고위직이었다. 임무는 성균관에서 유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종학에서의 교육까지도 담당하였다. 또한 정례적이지는 않지만 세자의 교육을 전담하는 임무를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경연이나 서연에서 진강을 하기도 하였다.
사성 (司成)
사성(司成)은 조선시대 성균관(成均館)의 종3품 관직이다. 성균관의 녹관(祿官)으로 대사성 다음의 고위직이었다. 임무는 성균관에서 유생들을 교육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종학에서의 교육까지도 담당하였다. 또한 정례적이지는 않지만 세자의 교육을 전담하는 임무를 담당하기도 하였으며, 경연이나 서연에서 진강을 하기도 하였다.
사업(司業)은 조선 후기, 성균관(成均館)의 정4품 관직이다. 인조 반정 후 산림(山林)을 초빙하기 위해 산림직을 두었는데, 산림직 가운데 가장 먼저 설치되었다. 정원은 1명으로 조선 후기 사상계 · 정치계를 주도하던 인사들이 임명되었다. 사업은 대사성과 협력하여 유생들을 훈도하고 도학(道學)을 강의하였으며, 경연에서 국왕에게 진강을 하기도 하고 의례 문제 논의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였다.
사업 (司業)
사업(司業)은 조선 후기, 성균관(成均館)의 정4품 관직이다. 인조 반정 후 산림(山林)을 초빙하기 위해 산림직을 두었는데, 산림직 가운데 가장 먼저 설치되었다. 정원은 1명으로 조선 후기 사상계 · 정치계를 주도하던 인사들이 임명되었다. 사업은 대사성과 협력하여 유생들을 훈도하고 도학(道學)을 강의하였으며, 경연에서 국왕에게 진강을 하기도 하고 의례 문제 논의에 참여하여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였다.
설서(說書)는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7품 관직이다. 홍문관의 박사(博士)를 고쳐 정원 1명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법제화되었다. 한림(翰林)과 함께 청선(淸選)이라 할 정도로 입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관직이었다. 시강원에서 대사(大事)를 기록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였다.
설서 (說書)
설서(說書)는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정7품 관직이다. 홍문관의 박사(博士)를 고쳐 정원 1명으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법제화되었다. 한림(翰林)과 함께 청선(淸選)이라 할 정도로 입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관직이었다. 시강원에서 대사(大事)를 기록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하였다.
세마(洗馬)는 조선시대,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에 소속된 정9품 관직이다. 세자익위사는 세자의 호위를 담당하던 관서였으며, 계방(桂坊)이라고도 하였다. 익위사의 관직은 무반직이었으나 문반도 임명되었다. 세자가 궁궐 밖으로 거동할 때 의장을 준비하여 들고 호위하였다. 세자가 궁궐 안에서 거동하거나 각종 의례에 참석할 때 호위를 맡았다. 세자를 가까이에서 호위하는 만큼 신뢰도와 충성도가 중요한 관직이었고, 때로는 외척이나 공신의 자제들을 임명하기도 하였다.
세마 (洗馬)
세마(洗馬)는 조선시대, 세자익위사(世子翊衛司)에 소속된 정9품 관직이다. 세자익위사는 세자의 호위를 담당하던 관서였으며, 계방(桂坊)이라고도 하였다. 익위사의 관직은 무반직이었으나 문반도 임명되었다. 세자가 궁궐 밖으로 거동할 때 의장을 준비하여 들고 호위하였다. 세자가 궁궐 안에서 거동하거나 각종 의례에 참석할 때 호위를 맡았다. 세자를 가까이에서 호위하는 만큼 신뢰도와 충성도가 중요한 관직이었고, 때로는 외척이나 공신의 자제들을 임명하기도 하였다.
세자궁은 조선시대 왕세자의 처소, 혹은 세자의 여관이다. 세자궁은 동궁 · 동궁전이라 칭했으며, 세자가 거처하던 활동 권역이다. 이곳에는 세자의 관속으로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를 배치하였다. 한편, 세자궁은 이곳에 소속된 여관을 지칭하기도 한다. 여관은 종2품 양제 이하 종5품 소훈까지 내궁과 종6품 수규 · 수칙 이하 궁관으로 구성되었다.
세자궁 (世子宮)
세자궁은 조선시대 왕세자의 처소, 혹은 세자의 여관이다. 세자궁은 동궁 · 동궁전이라 칭했으며, 세자가 거처하던 활동 권역이다. 이곳에는 세자의 관속으로 세자시강원과 세자익위사를 배치하였다. 한편, 세자궁은 이곳에 소속된 여관을 지칭하기도 한다. 여관은 종2품 양제 이하 종5품 소훈까지 내궁과 종6품 수규 · 수칙 이하 궁관으로 구성되었다.
시강관(侍講官)은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4품 관직이다. 경연에서 진강(進講)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시강관은 태조 대에 강독관(講讀官) 4명에 속하였으며, 정종 대에 강독관이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화하였다. 세종 대에는 집현전 부제학이 겸직하였고, 성종 대에는 홍문관 관원 4명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는 규장각 설치 후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시강관 (侍講官)
시강관(侍講官)은 조선시대, 경연(經筵)의 정4품 관직이다. 경연에서 진강(進講)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시강관은 태조 대에 강독관(講讀官) 4명에 속하였으며, 정종 대에 강독관이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화하였다. 세종 대에는 집현전 부제학이 겸직하였고, 성종 대에는 홍문관 관원 4명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는 규장각 설치 후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시독관(侍讀官)은 조선시대, 경연의 정5품 관직이다. 경연에서 경사(經史)의 강독과 진강(進講)을 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태조 대에 두었던 강독관(講讀官)이 정종 대에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화하였다. 세종 대에는 집현전 직제학이 겸직하였고, 예종 대에 경연관이 시강관으로 통합되어 불리면서 관직명이 사라졌다가 성종 대에 다시 설치되어 홍문관 교리 · 부교리 각 2명씩 모두 4명의 관원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 규장각 설치 후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시독관 (侍讀官)
시독관(侍讀官)은 조선시대, 경연의 정5품 관직이다. 경연에서 경사(經史)의 강독과 진강(進講)을 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태조 대에 두었던 강독관(講讀官)이 정종 대에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화하였다. 세종 대에는 집현전 직제학이 겸직하였고, 예종 대에 경연관이 시강관으로 통합되어 불리면서 관직명이 사라졌다가 성종 대에 다시 설치되어 홍문관 교리 · 부교리 각 2명씩 모두 4명의 관원이 겸직하였다. 정조 대에 규장각 설치 후 규장각 직각이 겸직하였다.
영풍군은 조선의 4대 국왕인 세종의 왕자이다. 이름은 전(瑔)이다. 세종의 서자 중 여덟 번째 아들로, 혜빈양씨의 3남이다. 단종을 보호하려다 세조 즉위 후 예안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하여 임실로 귀양을 갔으며,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시도에 연루되어 위리안치 중 죽임을 당하였다.
영풍군 (永豊君)
영풍군은 조선의 4대 국왕인 세종의 왕자이다. 이름은 전(瑔)이다. 세종의 서자 중 여덟 번째 아들로, 혜빈양씨의 3남이다. 단종을 보호하려다 세조 즉위 후 예안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후 단종복위운동에 참여하여 임실로 귀양을 갔으며, 금성대군의 단종 복위 시도에 연루되어 위리안치 중 죽임을 당하였다.
영흥본궁은 조선시대 함경도 영흥에 있던 태조 관련 본궁이다. 태조와 태조비 신의왕후 한씨 · 신덕왕후 강씨, 태조의 부모 환조와 환조비 의혜왕후 최씨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였던 사당이었다. 숙종과 정조 시기에 제향이 정비되어 국가 전례로서 위상을 갖추었다.
영흥본궁 (永興本宮)
영흥본궁은 조선시대 함경도 영흥에 있던 태조 관련 본궁이다. 태조와 태조비 신의왕후 한씨 · 신덕왕후 강씨, 태조의 부모 환조와 환조비 의혜왕후 최씨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하였던 사당이었다. 숙종과 정조 시기에 제향이 정비되어 국가 전례로서 위상을 갖추었다.
우부빈객(右副賓客)은 조선시대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종2품 관직이다. 1395년(태조4)에 설치되었으며, 정원은 1명으로 타 관서의 겸직관이었다. 우부빈객의 임무는 서연(書筵)에서 강의의 실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업무를 주로 하였다. 시강원의 고위직으로 운영과 관원 임용에 참여할 수 있었다.
우부빈객 (右副賓客)
우부빈객(右副賓客)은 조선시대에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에 소속된 종2품 관직이다. 1395년(태조4)에 설치되었으며, 정원은 1명으로 타 관서의 겸직관이었다. 우부빈객의 임무는 서연(書筵)에서 강의의 실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세자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업무를 주로 하였다. 시강원의 고위직으로 운영과 관원 임용에 참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