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연(經筵)의 정4품 관직으로, 경연에서 진강(進講)을 담당하였다. 경연에서는 국왕에게 유교 경전과 역사서 등을 강독(講讀)하고 이에 대해 논평과 토론을 하였다. 경연에서 경사(經史)의 강독을 담당하는 관원을 경연관(經筵官)이라고 하였는데, 참상관(參上官)으로 시강관 · 시독관(侍讀官) · 검토관(檢討官), 참하관(參下官)으로 사경(司經) · 설경(說經) · 전경(典經)이 있다.
시강관 이하 경연관을 경연낭청(經筵郎廳) 혹은 낭관(郎官)이라고 하며, 모두 홍문관(弘文館) 관원이 겸직(兼職)하였다. 시강관의 업무는 경연에서 강의를 하는 것이 주된 것이었다. 시강관은 경연 교재로 쓰는 경전이나 사서(史書)를 국왕에게 강론하고 국왕과 문답을 주고받았다. 시강관의 강의는 유생들을 궁궐에 불렀을 때에도 이루어졌다. 한편 시강관은 국왕이 성균관에 거둥하여 유생들의 공부 상황을 돌보고 공자에게 제향을 하는 ‘시학석전제(視學釋奠祭)’에 동행하여 참여하였다.
시강관은 정종 즉위 후 경연 기사에 등장하였다. 그 이전 태조가 즉위 직후 관제를 새로 정할 때 경연에는 종3품 강독관(講讀官) 4명, 정4품 검토관 2명을 두었다. 정종 대에 시강관과 시독관이 경연에 참여한 것을 보면 강독관이 시강관과 시독관으로 분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세종 대에 집현전이 창설됨에 따라 1420년(세종 2)에 집현전 관원들이 경연관을 겸직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정3품 부제학(副提學)이 시강관을 역임하게 되었다.
예종이 즉위한 후 경연의 당하관 이하는 낭관 6명을 두고 모두 시강관이라고 불렀다. 성종이 즉위한 후 세조 대에 폐지한 집현전의 기능을 이어 홍문관을 만들었고, 홍문관 관원이 경연관을 겸직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이에 따라 시강관은 정3품 당하관 직제학 1명, 종3품 전한(典翰) 1명, 정4품 응교(應敎)1명, 그리고 종4품 부응교(副應敎) 1명 이렇게 모두 4명을 두는 것으로 『 경국대전』에 법제화되었다. 정조 대에는 규장각을 설치한 후 1781년(정조 5)에는 규장각 직각(直閣)이 본래 품계에 따라 시강관 · 시독관 · 검토관을 겸직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