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장창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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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현은 백제가 신라의 침략에 대비하여 방어용 목책으로 축조한 요충지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501년에 탄현에 목책을 설치하여 신라의 침략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660년 흥수가 의자왕에게 한 명의 군사와 한 자루의 창으로 1만 명을 막을 수 있는 곳이라고 조언하였다. 그러나 흥수의 조언을 듣지 않아 탄현을 넘어 온 신라군이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와 싸워 승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흔하게 사용하는 이름이었기 때문에 위치 비정이 쉽지 않아 논란이 분분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충남 공주와 부여, 전북 완주에 탄현 지명이 남아 있다.
탄현 (炭峴)
탄현은 백제가 신라의 침략에 대비하여 방어용 목책으로 축조한 요충지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501년에 탄현에 목책을 설치하여 신라의 침략에 대비하였다고 한다. 660년 흥수가 의자왕에게 한 명의 군사와 한 자루의 창으로 1만 명을 막을 수 있는 곳이라고 조언하였다. 그러나 흥수의 조언을 듣지 않아 탄현을 넘어 온 신라군이 황산벌에서 계백의 결사대와 싸워 승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흔하게 사용하는 이름이었기 때문에 위치 비정이 쉽지 않아 논란이 분분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충남 공주와 부여, 전북 완주에 탄현 지명이 남아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남성골(南城谷)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
청원 남성골 고구려유적 (淸原 南城골 高句麗遺蹟)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남성골(南城谷)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리에 자리한 고구려시대의 무덤인 덕흥리고분의 앞방 안벽 가운데 윗 부분에 있는 묵서명.
덕흥리 고분 묵서명 (德興里 古墳 墨書銘)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역 덕흥리에 자리한 고구려시대의 무덤인 덕흥리고분의 앞방 안벽 가운데 윗 부분에 있는 묵서명.
안악 3호분 묵서명은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자리한 고구려시대의 무덤인 안악 3호분의 앞방 서벽 왼쪽 장하독(帳下督) 그림 위에 있는 묵서명이다. 336년에 전연 모용황에 불만을 품고 고구려에 귀화한 동수가 357년에 죽을 때까지 지낸 관직을 나열하고 있다. 묵서명과 관련하여 무덤의 주인공이 요동군 평곽현 출신의 동수인지 아니면 고구려왕[미천왕·고국원왕]인지를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 학계에서는 고구려왕으로 보는 견해가 대세이고 남한 학계에서는 동수설이 통설로 자리매김하였다. 고구려가 안악 지방을 언제 어떻게 차지하고 지배하였는지 규명할 수 있는 사료이다.
안악 3호분 묵서명 (安岳 三號墳 墨書銘)
안악 3호분 묵서명은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자리한 고구려시대의 무덤인 안악 3호분의 앞방 서벽 왼쪽 장하독(帳下督) 그림 위에 있는 묵서명이다. 336년에 전연 모용황에 불만을 품고 고구려에 귀화한 동수가 357년에 죽을 때까지 지낸 관직을 나열하고 있다. 묵서명과 관련하여 무덤의 주인공이 요동군 평곽현 출신의 동수인지 아니면 고구려왕[미천왕·고국원왕]인지를 두고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북한 학계에서는 고구려왕으로 보는 견해가 대세이고 남한 학계에서는 동수설이 통설로 자리매김하였다. 고구려가 안악 지방을 언제 어떻게 차지하고 지배하였는지 규명할 수 있는 사료이다.
평안북도 태천군 용상동에 있는 고구려의 농오리산성 축조와 관련한 내역을 바위에 새긴 글.
농오리 산성 마애석각 (籠吾里 山城 磨崖石刻)
평안북도 태천군 용상동에 있는 고구려의 농오리산성 축조와 관련한 내역을 바위에 새긴 글.
평양특별시 선교구역에서 출토된 전한(前漢) 문제(文帝)의 사당에서 사용한 종.
영광3년명 동종 (永光三年銘 銅鍾)
평양특별시 선교구역에서 출토된 전한(前漢) 문제(文帝)의 사당에서 사용한 종.
북한 함경남도 신포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찰터.
오매리 절터 (梧梅里 절터)
북한 함경남도 신포시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찰터.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찰터.
평양 상오리사지 (平壤 上五里寺址)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찰터.
북한 평안남도 평원군 덕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찰터.
원오리 절터 (元五里 절터)
북한 평안남도 평원군 덕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사찰터.
북한 평양시 낙랑구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오년계씨(五年季氏)' 명문이 새겨진 시대 미상의 동투겁창(銅矛).
오년계씨명 협봉동모 (五年季氏銘 狹鋒銅矛)
북한 평양시 낙랑구역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오년계씨(五年季氏)' 명문이 새겨진 시대 미상의 동투겁창(銅矛).
삼국시대 신라의 산성.
장산성 (獐山城)
삼국시대 신라의 산성.
삼국시대 백제의 산성.
혈성 (穴城)
삼국시대 백제의 산성.
삼국시대 신라의 산성.
고허성 (高墟城)
삼국시대 신라의 산성.
삼국시대 신라의 산성.
괴곡성 (槐谷城)
삼국시대 신라의 산성.
삼국시대 백제의 산성.
금현성 (金峴城)
삼국시대 백제의 산성.
삼국시대 신라의 산성.
대증산성 (大甑山城)
삼국시대 신라의 산성.
독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의 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548년에 백제가 한강 이북에서 차지하고 있던 산성이다. 독산성의 위치에 대해 종전에는 『일본서기』에 근거하여 ‘고산(孤山)’을 독산(獨山)이라고 추정하여 충남 예산군으로 비정하였다. 최근에는 ‘한강 이북'에 있었다는 기록과 고구려의 용병으로 예(말갈)의 군사가 동원된 점에 주목하여 경기도 양주와 포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독산성의 위치는 475년~551년 사이 한강 유역의 영유권을 논란과 백제와 신라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독산성 (獨山城)
독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의 산성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548년에 백제가 한강 이북에서 차지하고 있던 산성이다. 독산성의 위치에 대해 종전에는 『일본서기』에 근거하여 ‘고산(孤山)’을 독산(獨山)이라고 추정하여 충남 예산군으로 비정하였다. 최근에는 ‘한강 이북'에 있었다는 기록과 고구려의 용병으로 예(말갈)의 군사가 동원된 점에 주목하여 경기도 양주와 포천 등이 거론되고 있다. 독산성의 위치는 475년~551년 사이 한강 유역의 영유권을 논란과 백제와 신라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삼국시대 신라의 산성.
매리포성 (買利浦城)
삼국시대 신라의 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