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정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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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탄전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가곡면·영춘면·단양읍 일대에 걸쳐 있던 탄전이다. 단양탄전은 충청북도 단양군 일대의 탄전 지대와 단양탄광을 비롯한 크고 작은 탄광들을 포함하여 지칭한다. 1941년 개발을 시작하여, 해방 후 미군정과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다가 1956년에는 민간에 매각되었다. 석탄 생산보다 수송의 문제가 더 커서 일제강점기 때부터 협궤선인 단양탄광선 건설을 시도하였으나, 해방으로 중단되었다가 다시 한국전쟁으로 중단되면서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총매장량은 6206만 톤에 탄질은 중급탄이다.
단양탄전 (丹陽炭田)
단양탄전은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가곡면·영춘면·단양읍 일대에 걸쳐 있던 탄전이다. 단양탄전은 충청북도 단양군 일대의 탄전 지대와 단양탄광을 비롯한 크고 작은 탄광들을 포함하여 지칭한다. 1941년 개발을 시작하여, 해방 후 미군정과 대한석탄공사가 운영하다가 1956년에는 민간에 매각되었다. 석탄 생산보다 수송의 문제가 더 커서 일제강점기 때부터 협궤선인 단양탄광선 건설을 시도하였으나, 해방으로 중단되었다가 다시 한국전쟁으로 중단되면서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총매장량은 6206만 톤에 탄질은 중급탄이다.
단천광산은 함경남도 단천군 수하면에 있는 철광산이다. 대한제국 시기 궁내부 소속 광산으로 지정되었다. 사금 채취로 유명하던 단천광산은 1943년에 노천광이 발견되면서 철광으로 전환하였다. 남대천 강바닥의 자갈을 채취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단천광산은 생산 계획이 연간 5만 톤인 소규모 광산이었지만, 68.39%의 높은 철분 함유량과 낮은 유해 성분으로 주목받았다. 조선인 최남주가 1943년부터 개발에 착수하여 1944년 8월 주식회사로 운영하였으나 해방 이후 조선식산은행으로 소유권이 양도되었다.
단천광산 (端川鑛山)
단천광산은 함경남도 단천군 수하면에 있는 철광산이다. 대한제국 시기 궁내부 소속 광산으로 지정되었다. 사금 채취로 유명하던 단천광산은 1943년에 노천광이 발견되면서 철광으로 전환하였다. 남대천 강바닥의 자갈을 채취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단천광산은 생산 계획이 연간 5만 톤인 소규모 광산이었지만, 68.39%의 높은 철분 함유량과 낮은 유해 성분으로 주목받았다. 조선인 최남주가 1943년부터 개발에 착수하여 1944년 8월 주식회사로 운영하였으나 해방 이후 조선식산은행으로 소유권이 양도되었다.
대유동광산은 평안북도 동창군 대유로동자구에 있는 금광이다. 대유동광산은 1901년 프랑스인 살타렐이 특허를 취득하였으며, 고려시대부터 사금 채취로 유명하였다. 1914년 500명의 광부가, 1937년 일본광업에 매각될 당시에는 3,800명의 광부가 3교대로 일하였다. 당시 관리자의 잔인한 대우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담은 협박장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행정 주소 변경 전 주소는 평안북도 창성군 청산면이었으며, 북한의 주요 금광 중 하나로 꼽힌다.
대유동광산 (大楡洞鑛山)
대유동광산은 평안북도 동창군 대유로동자구에 있는 금광이다. 대유동광산은 1901년 프랑스인 살타렐이 특허를 취득하였으며, 고려시대부터 사금 채취로 유명하였다. 1914년 500명의 광부가, 1937년 일본광업에 매각될 당시에는 3,800명의 광부가 3교대로 일하였다. 당시 관리자의 잔인한 대우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를 담은 협박장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행정 주소 변경 전 주소는 평안북도 창성군 청산면이었으며, 북한의 주요 금광 중 하나로 꼽힌다.
백년광산은 황해북도 곡산군 이령면과 신평군 만년로동자구에 걸쳐 있는 중석 광산이다. 1931년 발견된 북한 최대의 중석 광산이다. 1932년 원윤수가 개발을 시작하여 1934년에 이미 동양 최대의 텅스텐 광산으로 평가받았으며, 1937년에 한반도 중석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원윤수는 백년광산을 통해 일제강점기 3대 광산 재벌 중 한 명이 되었다. 백년광산은 1937년 소림광업에 매각되었으며, 1958년부터는 만년광산으로 개칭하였다.
백년광산 (百年鑛山)
백년광산은 황해북도 곡산군 이령면과 신평군 만년로동자구에 걸쳐 있는 중석 광산이다. 1931년 발견된 북한 최대의 중석 광산이다. 1932년 원윤수가 개발을 시작하여 1934년에 이미 동양 최대의 텅스텐 광산으로 평가받았으며, 1937년에 한반도 중석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였다. 원윤수는 백년광산을 통해 일제강점기 3대 광산 재벌 중 한 명이 되었다. 백년광산은 1937년 소림광업에 매각되었으며, 1958년부터는 만년광산으로 개칭하였다.
북청광산은 함경남도 북청군 이곡면 상리에 있는 철광산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중요 광산으로 지정한 철광산이다. 1944년 고이소 구니아키 총독이 직접 방문하여 철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할 정도로 주목받는 광산이었다. 북청광산의 철광석 수송을 위해 북청선 산업철도를 개설하였으며, 1944년의 연장에 이어 1960년에 51.7㎞까지 확장하였다. 2013년 기준 북한의 철 매장량은 약 43억 톤으로 추정되며, 북청광산을 포함한 주요 철광산에서 연간 500만 톤의 철을 생산해 7개의 제철소 및 제강소로 보내고 있다.
북청광산 (北靑鑛山)
북청광산은 함경남도 북청군 이곡면 상리에 있는 철광산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중요 광산으로 지정한 철광산이다. 1944년 고이소 구니아키 총독이 직접 방문하여 철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할 정도로 주목받는 광산이었다. 북청광산의 철광석 수송을 위해 북청선 산업철도를 개설하였으며, 1944년의 연장에 이어 1960년에 51.7㎞까지 확장하였다. 2013년 기준 북한의 철 매장량은 약 43억 톤으로 추정되며, 북청광산을 포함한 주요 철광산에서 연간 500만 톤의 철을 생산해 7개의 제철소 및 제강소로 보내고 있다.
삼화광산은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삼화동에 있는 철광산이다. 1938년 일본인 고레가와 긴조가 조선광업개발조합을 결성하여 19.14㎢에 걸쳐 9개 광구의 삼화광산을 운영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연산 5만 원 이상의 대형 철광산으로 손꼽혔으며, 일제는 전쟁 수행을 위해 삼화광산 개발을 적극 지원하였다. 삼화광산에 이어 1943년에는 용광로를 갖춘 제철 사업을 추진하였다. 해방 후 고레가와제철소는 삼화제철소로 명칭을 바꿨으며, 1970년대 포항제철이 설립되면서 가동을 중단하였다.
삼화광산 (三和鑛山)
삼화광산은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삼화동에 있는 철광산이다. 1938년 일본인 고레가와 긴조가 조선광업개발조합을 결성하여 19.14㎢에 걸쳐 9개 광구의 삼화광산을 운영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연산 5만 원 이상의 대형 철광산으로 손꼽혔으며, 일제는 전쟁 수행을 위해 삼화광산 개발을 적극 지원하였다. 삼화광산에 이어 1943년에는 용광로를 갖춘 제철 사업을 추진하였다. 해방 후 고레가와제철소는 삼화제철소로 명칭을 바꿨으며, 1970년대 포항제철이 설립되면서 가동을 중단하였다.
아오지탄전은 함경북도 경흥군 아오지읍 오봉동에 있는 한반도 최대 규모의 탄전이다. 1920년대 말부터 개발을 시작하였으며, 갈탄인 유연탄의 품질까지 우수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군수산업 확보를 위해 탄광의 개발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아오지탄전은 1935년 웅기항 건설과 강안철도 개통으로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1977년 6월 13일 김일성 주석의 현지 지도를 기념해 경흥군은 은덕군으로 개칭되었고 아오지탄광은 그 날짜를 기념하여 ‘6·13탄광’으로 변경되었다.
아오지 탄전 (阿吾地炭田)
아오지탄전은 함경북도 경흥군 아오지읍 오봉동에 있는 한반도 최대 규모의 탄전이다. 1920년대 말부터 개발을 시작하였으며, 갈탄인 유연탄의 품질까지 우수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군수산업 확보를 위해 탄광의 개발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아오지탄전은 1935년 웅기항 건설과 강안철도 개통으로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1977년 6월 13일 김일성 주석의 현지 지도를 기념해 경흥군은 은덕군으로 개칭되었고 아오지탄광은 그 날짜를 기념하여 ‘6·13탄광’으로 변경되었다.
영월탄전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일대에 걸쳐 있는 무연탄전이다. 영월 지역의 여러 탄광을 포함하는 용어로, 대한석탄공사 영월광업소를 비롯하여 민영 탄광인 옥동·한일·동우·대성·태원·대림 등 크고 작은 탄광 모두를 포함한다. 영월탄전은 1929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본격적으로 조사되었으며, 1935년 강원도 최초로 개광한 영월광업소가 대표적이다. 영월탄전의 매장량은 다른 탄전에 비해 매우 적지만, 상징성은 작지 않다. 영월광업소의 석탄은 삭도를 통해 공중으로 영월화력발전소까지 직송되었으며, 이를 통해 국내 전기 공급이 원활하였다.
영월 탄전 (寧越炭田)
영월탄전은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일대에 걸쳐 있는 무연탄전이다. 영월 지역의 여러 탄광을 포함하는 용어로, 대한석탄공사 영월광업소를 비롯하여 민영 탄광인 옥동·한일·동우·대성·태원·대림 등 크고 작은 탄광 모두를 포함한다. 영월탄전은 1929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본격적으로 조사되었으며, 1935년 강원도 최초로 개광한 영월광업소가 대표적이다. 영월탄전의 매장량은 다른 탄전에 비해 매우 적지만, 상징성은 작지 않다. 영월광업소의 석탄은 삭도를 통해 공중으로 영월화력발전소까지 직송되었으며, 이를 통해 국내 전기 공급이 원활하였다.
재령광산은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과 삼강면에 걸쳐 있는 철광산이다.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광산으로, 1907년 대한제국 궁내부 소관으로 개발된 규모가 큰 철광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미쓰비시광업이 관리하였으며, 생산된 철은 야하타제철소로 보냈다. 초기에는 노천채굴 방식이었으나, 깊이가 깊어지면서 트럭 리프트 시스템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였다. 재령광산은 북한의 주요 철광산 중 하나로, 해방 이후부터는 생산된 철광석을 황해제철기업소로 보내고 있다. 북한에서 재령광산은 규모 면에서 무산광산, 풍산광산, 단천광산, 은율광산 다음으로 크다.
재령광산 (載寧鑛山)
재령광산은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과 삼강면에 걸쳐 있는 철광산이다.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광산으로, 1907년 대한제국 궁내부 소관으로 개발된 규모가 큰 철광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미쓰비시광업이 관리하였으며, 생산된 철은 야하타제철소로 보냈다. 초기에는 노천채굴 방식이었으나, 깊이가 깊어지면서 트럭 리프트 시스템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였다. 재령광산은 북한의 주요 철광산 중 하나로, 해방 이후부터는 생산된 철광석을 황해제철기업소로 보내고 있다. 북한에서 재령광산은 규모 면에서 무산광산, 풍산광산, 단천광산, 은율광산 다음으로 크다.
화순탄전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복암리에 있는 무연탄전이다. 이 탄전은 호남의 대표적인 탄전 지대이다. 박현경이 1905년 광구를 등록할 정도로 이른 시기에 석탄산업에 눈을 뜬 곳이며, 1931년부터는 대량으로 석탄 채굴이 이뤄졌다. 종연탄광으로 개칭한 화순무연탄, 남선탄광으로 개칭한 구암탄광 등이 1931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나섰다. 해방 이후 미군정청은 두 탄광을 통합하여 화순광업소로 운영하였다. 화순광업소는 2023년 폐광하기까지 한국의 4번째 마지막 광업소이자 최장수 광업소의 기록을 남겼다.
화순 탄전 (和順炭田)
화순탄전은 전라남도 화순군 동면 복암리에 있는 무연탄전이다. 이 탄전은 호남의 대표적인 탄전 지대이다. 박현경이 1905년 광구를 등록할 정도로 이른 시기에 석탄산업에 눈을 뜬 곳이며, 1931년부터는 대량으로 석탄 채굴이 이뤄졌다. 종연탄광으로 개칭한 화순무연탄, 남선탄광으로 개칭한 구암탄광 등이 1931년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나섰다. 해방 이후 미군정청은 두 탄광을 통합하여 화순광업소로 운영하였다. 화순광업소는 2023년 폐광하기까지 한국의 4번째 마지막 광업소이자 최장수 광업소의 기록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