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허종"
검색결과 총 11건
「반민족행위처벌법」은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정한 법률이다. 총 3장과 부칙으로 구성되었으며, 반민족 행위의 범주, 특별조사위원회의 구성과 조사 방법 및 절차,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의 구성과 재판절차, 공소시효를 규정하였다. 이 법에 따라 1949년 1월부터 8월 31일까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모두 680여 명을 체포하였으며, 이들 중 일부가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1951년 2월 14일 「반민족행위처벌법등폐지에관한법률」이 제정, 공포되어 폐지되었다.
반민족행위처벌법 (反民族行爲處罰法)
「반민족행위처벌법」은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자를 처벌하기 위하여 제정한 법률이다. 총 3장과 부칙으로 구성되었으며, 반민족 행위의 범주, 특별조사위원회의 구성과 조사 방법 및 절차,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의 구성과 재판절차, 공소시효를 규정하였다. 이 법에 따라 1949년 1월부터 8월 31일까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모두 680여 명을 체포하였으며, 이들 중 일부가 기소되어 재판을 받았다. 1951년 2월 14일 「반민족행위처벌법등폐지에관한법률」이 제정, 공포되어 폐지되었다.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은 1960년 4월 26일 이전에 특정 지위를 이용하여 현저한 반민주 행위를 한 자의 공민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제정한 법률이다. 현저한 반민주 행위 의제와 심사 대상, 공민권 제한 기간을 포함한 전문 15조와 부칙으로 구성되었다. 이 법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법 제정의 목적을 실현하지 못하고 1962년 3월 16일 폐지되었다.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 (反民主行爲者公民權制限法)
「반민주행위자공민권제한법」은 1960년 4월 26일 이전에 특정 지위를 이용하여 현저한 반민주 행위를 한 자의 공민권을 제한하기 위하여 제정한 법률이다. 현저한 반민주 행위 의제와 심사 대상, 공민권 제한 기간을 포함한 전문 15조와 부칙으로 구성되었다. 이 법은 1961년 5·16군사쿠데타로 법 제정의 목적을 실현하지 못하고 1962년 3월 16일 폐지되었다.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했던 특별위원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反民族行爲特別調査委員會)
1948년부터 1949년까지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했던 특별위원회.
1946년 좌파 세력과 민중이 대구를 시작으로 남한 전역에서 미군정의 실정을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일으킨 사건.
대구 십일사건 (大邱 十一事件)
1946년 좌파 세력과 민중이 대구를 시작으로 남한 전역에서 미군정의 실정을 비판하고 시정을 요구하며 일으킨 사건.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외무부 차장, 조선중앙일보 사장 등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좌우합작운동을 주도하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힘쓴 정치인·독립운동가.
여운형 (呂運亨)
일제강점기 때, 임시정부 외무부 차장, 조선중앙일보 사장 등을 역임하며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해방 이후, 좌우합작운동을 주도하며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힘쓴 정치인·독립운동가.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인민당에서 활동하였으며, 사회민주당 대표,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친일반민족행위자.
여운홍 (呂運弘)
조선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인민당에서 활동하였으며, 사회민주당 대표,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친일반민족행위자.
장덕수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부사장,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47년에 사망했다. 일본 유학 후 여운형과 신한청년당을 결성했고, 『동아일보』 창간 후 초대 주필과 부사장이 되었다. 미국에 재차 유학하여 이승만 지지 활동을 하다 귀국했다. 이후 일제가 사상전향 공작을 위해 조직한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의 간부로서 『사상보국』의 발간을 주도했고, 침략전쟁 협력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이사를 역임했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을 창당하여 우파 이론가로 활동하다 암살당했다.
장덕수 (張德秀)
장덕수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부사장, 조선임전보국단 이사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정치인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4년(고종 31)에 태어나 1947년에 사망했다. 일본 유학 후 여운형과 신한청년당을 결성했고, 『동아일보』 창간 후 초대 주필과 부사장이 되었다. 미국에 재차 유학하여 이승만 지지 활동을 하다 귀국했다. 이후 일제가 사상전향 공작을 위해 조직한 시국대응전선사상보국연맹의 간부로서 『사상보국』의 발간을 주도했고, 침략전쟁 협력단체인 조선임전보국단 이사를 역임했다. 광복 후 한국민주당을 창당하여 우파 이론가로 활동하다 암살당했다.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인 주세붕(1495~1554)의 초상화.
주세붕 초상 (周世鵬 肖像)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인 주세붕(1495~1554)의 초상화.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보배산 기슭에 있는 조선전기 분청사기를 굽던 가마터.
태천 도요지 (泰川 陶窯址)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보배산 기슭에 있는 조선전기 분청사기를 굽던 가마터.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상감악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불탑. 부도.
거창 감악사지 부도 (居昌 紺岳寺址 浮屠)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상감악마을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불탑. 부도.
경상남도 양산군 동면에 있는 조선 시대 분청사기 가마터.
양산 가산리 도요지 (梁山 架山里 陶窯址)
경상남도 양산군 동면에 있는 조선 시대 분청사기 가마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