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의 동쪽 경사면에서 해안쪽으로 뻗은 낮은 구릉(표고 35∼45m) 위에 위치한다. 1990년 이 곳에서 체신부 소관의 건물신축부지 작업 중 유구와 유물이 발견되어 강릉대학교박물관이 발굴하였다.
발굴 결과, 모두 12기의 움집터[竪穴住居址]를 확인하였다. 움집터와 주변에서는 신라고분 7기와 고려고분 7기도 함께 확인되었다. 주거지는 장축이 대체로 구릉의 등고선방향과 일치한다.
구릉 남쪽 완경사면의 풍화암반을 파 들어가 움의 벽과 바닥을 조성하였다. 평면형태는 모두 장방형이다. 크기는 작은 것은 4.7m×4m(제2호, 18.8㎡), 큰 것은 7.8m×5.5m(제7호, 42.9㎡)정도이다. 제10 · 12호를 제외한 모든 집자리 바닥 둘레에는 기둥구멍이 남아 있었으며 3열로 배치되어 맞배지붕을 시사하는 것(제1 · 3호)도 있다.
제1호 주거지에서는 모두 15개의 기둥구멍이 벽선과 중앙에 배치되어 있었다. 바닥은 얇게 점토를 깔고 다졌으며 1∼3개의 저장공을 갖추고 있었다. 제1호에서는 토기를 바로 세워서 묻은 것과 밑동이 없는 토기를 거꾸로 묻은 것을 한 쌍으로 한 저장시설이 두 곳에서 확인되었다.
주거지 바닥에서는 그밖에 기둥구멍 사이를 연결해 파여진 제습용(除濕用) 홈(가느다란 도랑)을 가진 것도 있다. 화덕자리[爐址]는 제4 · 7 · 11호에서 확인되었다. 제4호의 화덕자리는 둘레에 타원형의 진흙띠를 돌렸으며, 제11호는 타원형으로 냇돌을 돌렸다.
주거지 바닥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주로 출토되었다. 제1호 주거지에서는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 3점, 돌도끼 5점, 돌칼 1점, 반달칼 4점, 갈판[碾石], 갈돌 각 1점씩, 숫돌 4점이 나왔다.
구멍무늬토기 3점 중 1점은 구멍무늬만 장식된 깊은 바리형[深鉢形]이고, 또 1점은 이중구연(二重口緣)에 단사선문(短斜線文)과 입술골무늬[口脣刻目文]가 함께 장식된 깊은 바리형 토기이다. 다른 1점은 구멍무늬 밑에 교차단사선문(交叉短斜線文)을 장식하였다.
돌도끼는 냇돌의 끝을 간 것이다. 돌칼은 홈자루[二段柄新]이며 반달칼은 등쪽[背部]이 약간 굽은 것이다. 그밖에도 제5호 주거지에서 민무늬토기편, 제8호에서 붉은간토기[赤色磨硏土器]편이 구멍무늬토기와 함께 나왔다.
또한 제4호에서 슴베가 있는 것과 없는 돌화살촉 5점, 제7호에서 바퀴날도끼[環狀石斧] 1점, 제2호에서 구두칼모양의 돌손칼 1점 등이 나왔다.
이 유적에서 얻어진 방사성탄소연대는 2650±110B.P.(제2호), 1270∼970B.C.(제3호, 보정연대), 790∼480B.C.(제4호, 보정연대)으로서 그 중간치는 서기전 8∼6세기쪽으로 모여 있다. 유물의 형태나 조합은 경기도 여주 흔암리 유적과 매우 흡사하고 시기도 대체로 비슷한 청동기시대 전기로 편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