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서원의 전신은 조선 초기에 창건된 단천향교(端川鄕校)로서, 임진왜란 때 불탄 향교를 1604년(선조 37)에 복원하였는데, 이때부터 공부자(孔夫子)의 영정을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왔다.
1641년(인조 19)에 영전(影殿)을 옮겨짓고 이듬해에 공자의 화상을 이전할 때 군수 성환(成瑍)이 복천원(福川院)이라 현판을 달고 서원으로 불렀으며, 이것이 향교와 서원으로 갈라지는 시초가 되었다.
이때의 서원구조는 영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 등으로 되어 향교와 같았고 제사를 모시는 주사(主祀)는 문선왕이었으나, 1695년(숙종 21)부터는 서원으로서의 체제를 정비하여 복천서원이라 칭하였다.
이와 함께 이계손(李繼孫)·유강(兪絳)·이후백(李後白)·한준겸(韓浚謙)·남구만(南九萬)·이안눌(李安訥)을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며, 복원 여부는 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