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5년 3월에 전 내금위 유세창(柳世昌) 등과 역모를 꾀하여 임금이 광릉에 거둥하는 기회를 이용, 보제원(普濟院)에서 삼정승 이하 여러 대신들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하려 하였다.
그러나 왕의 거둥이 의외로 빠른 3월 8일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거사하지 못하고 후일을 약속, 그달 25일에 모화관 근처인 반송정(盤松亭)에서 무과 전시(武科殿試)를 치르는 날에 거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전일 광릉행차시에 거사하기로 했던 사실이 누설될까 두려워한 수모자(首謀者) 유세창 형제가 영추문(迎秋門)에 나아가 역모를 고변, 체포되어 남시(南市)에서 능지처참형을 받고 3일간 효수(梟首)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