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내금위 유세창 등과 반역을 도모한 주모자.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04년(연산군 10)
사망 연도
1525년(중종 20)
본관
보성(寶城)
목차
정의
조선전기 내금위 유세창 등과 반역을 도모한 주모자.
생애 및 활동사항

본시 한량으로 전라도 보성사람이다. 1524년(중종 19)에 서울에 올라와 매부 이창정(李昌貞)의 집에 묵고 있으면서, 전 내금위 유세창(柳世昌) 등 무뢰배와 어울려 역모를 꾀하였다.

1525년 봄에 임금이 광릉(光陵)에 행차하는 기회를 노려 삼정승 이하 모든 대신들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하는 동시에 국왕이 자신들을 처벌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왕을 폐하고 먼 왕족이었던 봉천부수(鳳川副守) 억종(憶從)을 추대한다는 계획 아래 거사를 추진하였다.

1차 계획인 왕의 광릉 거둥시 보제원(普濟院) 거사는 시일이 촉박하여 실행하지 못하였다. 다시 2차 계획으로 모화관 근처인 반송정(盤松亭)에서 무과전시(武科殿試)를 치르는 날에 야음을 틈타 거사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1차 계획이 미수에 그친 뒤라 역모사실이 누설될까 두려워한 수모자(首謀者) 유세창 형제가 영추문(迎秋門)에 나아가 고변, 옥사가 벌어져 체포되어 남시(南市)에서 능지처참형을 받고 3일간 효수되었다.

참고문헌

『중종실록(中宗實錄)』
집필자
이봉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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