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홍망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풍기군수,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망구(望久)
고송(孤松)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00년(선조 33)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아주(鵝洲: 지금의 경상남도 거제)
주요 관직
풍기군수 |사헌부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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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풍기군수,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망구(望久), 호는 고송(孤松). 신응규(申應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몽득(申夢得)이고, 아버지는 승지 신지제(申之悌)이며, 어머니는 조지(趙址)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27년(인조 5) 진사시에 합격하고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3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주서·지평·정언·풍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652년(효종 3)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때 도승지 이시매(李時楳)가 자못 패만(悖慢)한 것을 지평 이온발(李溫發)이 상주(上奏)하다가 탄핵을 당하였는데, 이 때 이시매는 자기의 밝음을 선현을 이끌어서 증명하려 하였다.

이를 듣고서 직접 그 소(疏)를 보니 실로 모욕적이어서 이를 단독으로 왕에게 진달하였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당론을 타파하고자 하는 마당에 호당(護黨)한다 하여 탄핵을 받고 벽동(碧潼)으로 유배되었다가 두달 뒤 풀려났다.

1659년 풍기군수로 나갈 때 읍재(邑宰)가 연달아 관청에서 죽자, “내가 그 자리에 나가지 않고서는 요망스러운 말을 없앨 수 없다.”하고 부임한 뒤, 학교를 일으키고 교육에 힘썼다.

저서로는 『고송집(孤松集)』이 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효종실록(孝宗實錄)』
『고송집(孤松集)』
『영남인물고(嶺南人物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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