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망구(望久), 호는 고송(孤松). 신응규(申應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신몽득(申夢得)이고, 아버지는 승지 신지제(申之悌)이며, 어머니는 조지(趙址)의 딸이다.
1627년(인조 5) 진사시에 합격하고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1639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주서·지평·정언·풍기군수 등을 역임하였다.
1652년(효종 3) 사헌부지평으로 있을 때 도승지 이시매(李時楳)가 자못 패만(悖慢)한 것을 지평 이온발(李溫發)이 상주(上奏)하다가 탄핵을 당하였는데, 이 때 이시매는 자기의 밝음을 선현을 이끌어서 증명하려 하였다.
이를 듣고서 직접 그 소(疏)를 보니 실로 모욕적이어서 이를 단독으로 왕에게 진달하였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당론을 타파하고자 하는 마당에 호당(護黨)한다 하여 탄핵을 받고 벽동(碧潼)으로 유배되었다가 두달 뒤 풀려났다.
1659년 풍기군수로 나갈 때 읍재(邑宰)가 연달아 관청에서 죽자, “내가 그 자리에 나가지 않고서는 요망스러운 말을 없앨 수 없다.”하고 부임한 뒤, 학교를 일으키고 교육에 힘썼다.
저서로는 『고송집(孤松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