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알사는 종5품, 내시부는 종7품이었다. 일반적으로 알현을 청하는 사람, 또는 빈객을 주인에게 안내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고려시대에는 왕명의 전달과 왕이 사용하는 붓과 벼루의 공급, 궁궐문의 열쇠와 자물쇠의 관리 보관, 궁궐 안뜰의 포설(鋪設) 등에 관한 일을 하였다. 고려 초기에는 액정원(掖庭院), 성종 때는 액정국(掖庭局), 1308년(충선왕 복위 원년)에는 내알사, 다음 해에는 다시 액정국에 속하였다.
기록에 보이는 주요 임무는 국가의 길례(吉禮) 가운데 대사(大祀)인 원구단(圜丘壇)·사직단(社稷壇)·태묘(太廟)·별묘(別廟) 제례와 중사(中祀)인 적전(籍田)·문선왕묘(文宣王廟) 제례를 인도하였다.
그리고 소사(小祀)인 풍사단(風師壇)·우사단(雨師壇)·뇌신단(雷神壇)·영성단(靈星壇)·마조단(馬祖壇)·선목단(先牧壇)·마사단(馬社壇)·마보단(馬步壇) 제례와 영제국문의(禜祭國門儀)의 헌관(獻官)·향관(享官)을 인도하였다.
또한, 가례(嘉禮) 때에도 책사(冊使)와 사신(使臣)들을 인도하였다. 구체적으로 원구단 제례시에는 태위·사공·태상경·광록경 등을, 사직단 제례시에는 태상경·태위 등을, 태묘와 별묘 제례시에는 태상경·광록경·사도·아헌관·종헌관·사공·태위 등을 인도하였다.
적전 제례시에는 왕태자 이하 경전에 참여하는 여러 향관과 군관, 그리고 낭중을 인도했고, 문선왕묘 제례시에는 좨주·사업 이하 여러 향관을 인도하였다. 제례 참여시 복장은 평면무류(平冕無旒)로 의상에는 문채[章]가 없고 혁대를 매었다.
가례시에는 왕태후·왕비 책봉 때, 왕태자의 이름을 칭하고 부(府)를 세우는 의식 때, 왕태자가 비를 맞이하는 의식 때, 왕자와 공주를 책봉하는 의식 때 참여하여 사(使)·부사(副使) 등을 인도하였다.
한편 내시부에는 환관직인 왕명의 전달과 궁중 음식물의 감독, 대궐문과 전각의 수직과 열쇠 관리, 궁중 뜰의 청소와 포설 등을 주요 직임으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