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이능(爾能), 호는 우헌(寓軒). 안동 출신. 유운룡(柳雲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기(柳䄎)이며, 아버지는 유원리(柳元履)이다. 유원지(柳元之)의 문인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75년(숙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678년에는 검열을 지냈다. 이어 사관(史官)·이조좌랑을 거쳐 1689년에 지평(持平)·교리(校理)·헌납(獻納)을 역임하였다. 1689년 3월 홍문록에 등재되고, 다시 윤3월에 재차 홍문록에 등재되었다.
또 그 해 12월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였다. 한때 공충도도사(公忠道都事)로 있을 때 서천군수의 비행을 탄핵하여 파면시키어 도내가 숙연하였고, 교리로 있을 때는 부교리 민창도(閔昌道)와 함께 노론의 송시열(宋時烈)·김수항(金壽恒)·김석주(金錫胄)에 대한 엄벌과 민정중(閔鼎重)을 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차자(箚子)를 올려 민정중을 뒷날 벽동(碧潼)으로 유배하게 하였다.
읽지 않은 글이 없다고 할 만큼 많은 책을 섭렵하였고, 궁리하지 않은 이치(理致)가 없다고 할 만큼 사물의 이치에 통달하였다. 늘 혼자서 자신을 성찰하는 공부에 열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