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충청북도 충주시 중앙탑면에 있는 신라의 앞트기식돌덧널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2008년 정밀지표조사와 GPS측량을 실시한 결과 7개 구역에서 총 234기의 고분을 확인하였다. 이 중 대표 고분 2~3기에 대한 발굴을 실시하였는데, 출토유물은 대부분 토기류이며, 소량의 금속류와 장신구류가 확인되었다. 발굴결과 신라가 충주로 진출하여 행정구역인 국원소경이 조영되기 시작하는 6세기 중반~7세기 초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충북지역에서 위계가 가장 높은 신라후기의 고분군이다.
충주 누암리 고분군은 1980년 중원문화권 설정을 위한 지표조사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1983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2005년에는 사적으로 변경 지정되었다. 1989년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충북대학교 박물관의 조사에서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 굴식 고분) 2기, 고려시대 돌덧널무덤(석곽묘) 3기, 구덩무덤(토광묘) 1기, 1990년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충북대학교 박물관의 조사에서 굴식 돌방무덤 4기, 고려시대 구덩무덤 1기, 돌덧널무덤 1기, 1991년 중원군 · 충북대학교 박물관의 조사에서 굴식 돌방무덤 17기,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석실분: 앞트기식 고분) 4기, 소형 돌덧널무덤 3기, 고려시대 돌덧널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이후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현,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에서는 중원문화권 주요 고분군 종합학술연구사업의 일환으로 2008년 누암리 고분군에 대한 정밀지표조사와 GPS측량을 실시하여 7개 구역에서 총 234기의 고분을 확인하였고, 수치지도상에 기록화를 완료하였다. 조사결과 고분들이 지표상에 드러난 채 방치된 상태였다. 이에 연구소는 구역별 성격 규명과 고분군의 보존 · 관리를 위하여 대표 고분 2~3기에 대한 표본발굴을 실시하였다.
제1차 발굴조사는 '가'구역 내 1,000㎡를 2008년 10월 6일부터 12월 12일까지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신라시대 굴식 돌방무덤 2기, 조선시대 구덩무덤 2기, 시대 미상의 돌덧널무덤 1기, 석렬유구 1기가 확인되었다. 굴식 돌방무덤 45 · 50호분은 해발 197.6m의 봉우리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하단부 해발 125m 지점 남쪽 사면에 조성하였다. 봉토를 둘러싼 호석은 23단이며, 봉분의 지름은 14.917.6m, 잔존 높이는 4m 내외이다. 돌방의 축조와 함께 봉토를 동시에 쌓아 올렸으며, 돌방의 중심부로 갈수록 마사와 벌흙을 섞어 단단하게 다졌다. 특히 돌방과 맞닿은 부분은 적갈색의 점질토를 덮어 밀봉하였다.
천장의 높이는 190㎝ 내외이며, 궁륭형(穹窿形)의 둥근 천장으로 정상부에 커다란 판석 12매를 덮어 마무리하였다. 돌방의 평면형태는 장폭비 1.23:1 이하의 방형이다. 방형의 평면형태는 누암리 고분군과 하구암리 고분군에서 조사된 굴식 돌방무덤에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널길(연도)는 2기 모두 입구에서 보면 오른쪽의 동벽과 나란하게 조성한 우편재이다. 누암리 고분군과 하구암리 고분군에서는 대체로 오른쪽에 널길을 조성하고 있으나 중앙에 널길을 조성한 돌방무덤도 많다. 시상은 편평하고 각진 할석을 45단으로 쌓아 구획한 후 내부에 부정형 할석을 채워 넣었다. 할석의 빈틈은 점토로 채웠으며, 그 위에 지름 510㎝의 강돌을 깔아 마무리하였다. 시상의 규모는 대체로 길이 230㎝, 너비 80100㎝이다. 추가장은 1차 시상과 동일하게 덧붙여 나가는 방식으로 축조하였다. 한편 45호분은 서쪽 호석열 안에 지름 1.1m의 석곽을 만들어 토기 40점이 부장되었다.
제2차 조사는 2010년 4월 19일부터 6월 30일까지 '가'구역 내 9,900㎡에 대한 시 ·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신라시대 굴식 돌방무덤 2기, 앞트기식 돌덧널무덤 1기, 돌덧널무덤 2기, 조선시대 구덩무덤 1기, 회곽묘 1기가 확인되었다. 3기의 돌방무덤은 남한강과 탑평리 일대가 조망되는 능선의 사면에 위치한다. 54호분은 앞트기식 돌덧널무덤으로 남서단벽을 입구로 사용하였으며, 바닥에는 작은 할석을 깔고, 북쪽 단벽에 상대적으로 큰 할석으로 단을 설치하였다. 횡혈식석실분 56 · 60호분은 지름 8.7~9.2m이며, 경사가 급한 하단에만 호석을 돌려 봉토의 유실을 막았다. 60호는 봉분의 상단에 구를 돌려 토사 등의 유입을 막았다. 경사면의 일부를 굴착하거나 수평정지한 후 돌방과 봉토를 함께 축조하였다.
돌방의 구조와 형태, 출토유물은 기존에 조사된 누암리 고분군, 하구암리 고분군과 유사하다. 출토 유물은 대부분 토기류가 중심이며, 소량의 금속류와 장신구류가 확인되었다. 돌방 및 매납유구에서 출토된 단각 굽다리 접시와 부가구연대부 긴 목항아리 등의 유물로 보아 신라가 충주로 진출하여 국원소경이 조영되기 시작하는 6세기 중반~7세기 초에 해당하는 지배층의 무덤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