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화는 근대의 아동문학가이자 비평가, 번역가이다. 1906년 서울에서 태어나 1951년 사망했다. 필명은 최접몽(崔蝶夢), 접몽(蝶夢), 나븨ᄭᅮᆷ, 나뷔ᄭᅮᆷ, 최유범이고, 창씨명은 조산병화(朝山秉和)이다. 배재고보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24년 10월 10일 『조선일보』에 신시(新詩) 「무덤의 사람」을 발표하며 등단한 이후 1951년 사망 직전까지 다양한 아동문학 잡지와 일간지에서 동화, 수필, 번역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했다. 아동문제연구회 꽃별회, 조선아동예술작가협회를 창립했고, 『별나라』 편집 동인으로 활동했다.
최병화는 아동문학가이자 시인, 번역가로, 1906년 11월 20일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출생이라는 설도 있다. 필명은 최접몽(崔蝶夢), 접몽(蝶夢), 나븨ᄭᅮᆷ, 나뷔ᄭᅮᆷ, 최유범이고, 창씨명은 조산병화(朝山秉和)이다. 그는 배재고보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목마사(木馬社), 경성부청 토목과, 소학교 교사를 거쳐 해방 이후 연세대학교 교무과에서 근무하였고, 박문출판사 편집 기자 등을 지냈다.
최병화는 배재고보 재학 중인 1924년 10월 10일에 최접몽(崔蝶夢)이라는 필명으로 『조선일보』에 신시(新詩) 「무덤의 사람」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20년대 중후반부터 1951년 사망 직전까지 다양한 아동문학 잡지와 일간지에서 동화, 수필, 번역 등 다수의 작품을 발표하며 활동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 동료 문인 이원수와 함께 강원도 쪽으로 피난을 떠났다가 1951년 1·4 후퇴 때 서울로 복귀하던 중 주1
최병화는 방정환, 이정호, 연성흠 등과 교류하며 아동문학 잡지 『어린이』, 『신소년』, 『아이생활』, 『별나라』, 『학생』, 『새동무』, 『아동문화』, 『어린이나라』, 『진달래』 등에 작품을 발표했다. 현대소년 주3에서 활동했다. 안준식, 김도인, 양고봉, 염근수, 최희명 등과 1926년 『별나라』의 창간 당시부터 편집 동인으로 활동했고, 1928년부터 1929년까지는 인쇄인 역할을 맡았다.
최병화는 1927년 주요한, 염근수, 우도순, 한형택 등과 아동문제연구회 '꽃별회'를 창립하며 황해도 지방에 여름 '가갸거겨 학교'를 설립하는 등 소년 문예 운동에 매진했다. 꽃별회의 사무실 주소는 최병화의 집 주소인 ‘경성 관철동 251번지’였다. 1927년 진우촌, 한형택, 박아지, 염근수 등과 인천에서 문예지 『습작시대』에 참여했다. 1929년 연성흠이 중심이 되어 창립한 아동문제연구단체 '별탑회'의 특별 동화 순회에 연사 중 한 명으로 참가했다. 1929년 김영팔, 안준식, 양재응, 염근수 등과 함께 '조선아동예술작가협회'를 창립하였고 집행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최병화는 1940년 문사 부대(文士部隊)로 구성된 문인들과 육군 지원병 훈련소를 입영 견학하고 지원병 참여를 독려하는 글 「교수(敎授), 식사(食事)의 정연(整然)」을 『삼천리』 12권 10호에 발표하였다. 1941년에는 주4 구현 및 일본어 보급, 일본 정신에 입각한 아동 예술 교화를 목적으로 창립된 친일 예술 단체 '경성동극회(京城童劇會)'의 선거 위원 중 한 명이었다. ‘조산병화(朝山秉和)’로 창씨개명한 뒤 장편소설 「夢に見ろ顔」을 『아이생활』 1943년 10~12월호에 연재했다.
최병화는 1945년 10월 12일 소년 운동의 개시를 위하여 천도교당에서 열린 ‘조선소년운동중앙협의회’ 결성 대회에 참석하였고, 같은 해 11월 창립한 아동극단 '호동원'에서 발행하는 잡지 『호동』의 문예부 및 편집 위원을 맡았다. 조선문학가동맹 소속으로 활동하며 전국문학자대회(1946.2)에 참가하였다. 1946년 전조선문필가협회 대회에서 추천 위원을 맡았으며, 조선아동문화협회에서 창간하는 『아동순보』 창간 준비 위원으로 활동했다. 1947년 조선 어린이날 전국준비위원회의 준비 위원으로 선정되었다. 1949년 6월 주5에 가입하였다. 1949년 4월 30일 결성된 전국아동문학가협회에서 정지용, 조연현, 최정희 등과 함께 이사직을 맡았다. 1950년 조선일보사에서 주최한 '한자 문제 좌담회'에 아동문학 작가 대표로 참석했다.
최병화는 신시(新詩)로 등단한 이후 동화, 수필, 미담, 소설, 평론, 번안 등 다양한 문필 활동을 펼쳤다. 계급주의 의식을 바탕으로 불우하고 가난한 아동들이 현실의 고난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주로 창작하였고 ‘미담의 명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동화 「낙화암에 피는 꽃」(『조선일보』, 1929), 소년 미담 「소년 수병 엔리고』( 『동아일보』, 1929), 번역 「십오 세 소년의 세계 일주기」(『동아일보』, 19301931), 야구 소설 「홈으런 빼트」(『별나라』, 1929), 탐정소설 「혈염봉」(『학생』, 주2, 평론 「근대 여권 사상의 제상」( 『여성지우』, 1930), 소설, 「봉희의 편지」( 『신소설』, 1930), 동화 「오동나무 밑의 노인」( 『조광』, 1936), 평론 「아동 지도 문제 연구」(『부인』, 1947), 장편 모험 소설 「십자성의 비밀」(『어린이나라』, 19491950) 등이 있다. 단행본으로는 소년 역사소설 『낙화암에 피는 꽃』(조선어학회 교정, 1947), 소년소녀 장편소설 『꽃피는 고향』(박문출판사, 1949), 소년 장편소설집 『희망의 꽃다발』(민교사, 1949), 동화집 『즐거운 자장가』(명문당, 1951)을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