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 ()

현대문학
작품
박종화(朴鍾和)가 지은 장편 역사소설.
정의
박종화(朴鍾和)가 지은 장편 역사소설.
개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고, 1954년정음사(正音社)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홍경래의 난을 소재로 해서 우리 근대사의 영웅 홍경래의 일생을 그렸다. 이 작품은 상·하권으로 서장 왕자묘(王字墓)에서부터 종장 성락동풍지뢰화(星落東風地雷火)를 통해서 민족적 영웅 홍경래의 일대기를 낭만적 필치로 소설화했다.

홍경래의 난은 조선 순조 12년(1811)에 평안도 용강(龍江) 출신 홍경래의 선도로 일어났는데 서북인의 천대 차별정책과 국정의 부패에 맞선 큰 반란이었다. 이 반란은 불과 5개월 만에 종식되었지만 우리 근대사상 대규모의 반란사건이었다. 비록 홍경래의 의거는 실패로 끝났지만 홍경래의 이상세계를 위한 집념을 작가는 높이 승화시켰다.

내용

홍경래는 중화의 외숙 유초시에게서 공부를 배울 때 천자의 목을 벤다는, 기상이 완연한 글을 지었다. 유초시는 왕후장상이 무슨 따로 씨가 있겠는가 하고 서북 사람도 주저할 것 없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하는 대담한 소리에 깜짝 놀라 뒤의 화를 염려하여 홍경래를 자기 집에서 내쫓았다. 홍경래는 유초시의 배짱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 비겁한 마음씨, 이 나약한 행동은 조선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전형적인 썩은 선비의 모습이었다.

2년 후 홍경래가 향시(鄕試)에 합격하고 다시 과거(科擧)를 보았으나, 돈과 권력이 없는 탓으로 낙방했다. 이것이 불씨가 되어 홍경래의 불평불만은 크게 싹텄다. 홍경래는 반란을 일으켜 잠시 성공했으나, 관군에 몰려 참패하고 홍경래마저 전사함으로써 난은 종식된다.

의의와 평가

이 작품은 근대사상 엄청난 사건인 홍경래난의 원인을 홍경래 같은 영웅이 서북 출신인데다, 권문세가(權門勢家)에 태어나지 못한 탓으로 과거에 실패한 데서 근인(近因)을 찾고 있다. 작가는 홍경래의 역사적 쾌거를 소재로 민족적 영웅과 영웅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의 형성을 중시하여 작품화시키고, 동시에 작가 특유의 낭만적 표현으로 현대화시켰다.

참고문헌

『박종화(朴鍾和)의 삶과 문학』(윤병로, 서울신문사, 1993)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역사연구(歷史硏究)」(조규일, 성균관대학교대학원박사학위논문, 1989)
「월탄(月灘) 박종화(朴鍾和) -그의 인간(人間)과 문학(文學)」(김동리, 『예술원보』, 1981.12)
「월탄(月灘) 박종화론(朴鍾和論)」(조연현, 『신태양』, 1956.2)
집필자
윤병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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