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정력은 일과력과 마찬가지로 칠정, 즉 7개 천체의 위치를 계산하는 방법에 따라서 대통칠정력(大統七政曆), 시헌칠정력(時憲七政曆)이라고 구분해서 불렀다. 즉, 당시에 사용하던 역법이 시헌력(時憲曆)이라고 하면, 칠정력도 시헌력의 방법으로 계산하였기에 시헌칠정력이라고 지칭하였다. 조선에서는 1653년(효종 4) 이전까지는 대통력법(大統曆法)을 사용하여 역서들을 간행하였고, 1654년(효종 5) 이후로 청나라의 시헌력법을 받아들여서 역서들을 독자적으로 간행하였다. 따라서 중간에 다시 대통력으로 잠시 돌아가는 시기를 제외하면 17세기 중반 이후 간행된 공식 칠정력은 모두 시헌칠정력이 되는 셈이다.
칠정력의 편찬과 간행은 관상감에 소속된 30명, 혹은 35명의 삼력관(三曆官)들 중에서 규정에 따라 선발된 12인의 관원들이 담당하였는데, 이들을 칠정추보관(七政推步官)이라고 지칭하였다. 칠정추보관 12인은 매년 10월 초에 선발되어 2년 뒤에 사용할 칠정력의 편찬을 담당하였다. 그 결과 매년 간행된 칠정력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계산을 담당한 12인의 칠정추보관과 인쇄를 감독한 감인관(監印官) 2인의 명단이 열거되어 있었다.
한편, 칠정력은 태양과 달, 오행성의 위치와 일월식의 시점 등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역서이었기에 일반인들에게 널리 배포되지는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칠정력은 금속활자로 2부만 인쇄되어 그 중 1부는 국왕에게 진상되었고 나머지 1부는 관상감에 비치해 두어서 관상감의 천문학 분과 관원들이 참고하고 활용하게 하였다.
칠정력은 현재 칠정백중력(七政百中曆)의 형태로만 전하는데, 백중력(百中曆)은 이미 만들어진 역서들의 역일 역주 정보를 축적하여 100년치, 혹은 110년치 정도를 모아서 편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