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성여(聖與), 호는 쌍오(雙梧). 여주목사 민세주(閔世舟)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민영(閔韺)이고, 아버지는 이조참판 민응협(閔應協)이며, 어머니는 이성욱(李聲郁)의 딸이다. 민응회(閔応恢)에게 입양되었다. 형이 좌의정 민희(閔熙)이다.
1651년(효종 2) 별시 문과에 병과로, 1656년 문과 중시(文科重試) 병과로 급제한 뒤, 세자시강원설서(世子侍講院說書)·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 등을 거쳐 1666년(현종 7)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와서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1670년 안태사(安胎使)로 태봉(胎峰)에 편입된 전토(田土)를 관둔전(官屯田)으로 보상하게 하였다. 1671년 평안도관찰사를 거쳐 1674년에 진위 겸 진향사(陳慰兼進香使)로 다시 청나라에 다녀왔다.
숙종 때는 형조판서·홍문관제학(弘文館提學)·이조판서 등을 지냈으나, 1677년(숙종 3)의 증광시(增廣試) 때 아들 민주도(閔周道)의 과거부정사건으로 사직하였다. 그 뒤 다시 복직하여 공조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