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 1907년 덕산면 용하리에 용하영당(用夏影堂)을 창건하였다. 6.25사변으로 소실되어 청풍면 장선리에 새로 짓고 병산영당으로 개칭하였다. 그러다가 1994년 도로 개설로 인해 현재의 위치에 다시 새로운 건물을 짓고 영정을 봉안하였다.
원래 주희(朱熹)와 송시열(宋時烈)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뒤에 경술국치를 당하여 절식, 순절한 박세화(朴世和)를 이 영당에 배향하였고, 그 뒤 그의 제자 윤응선(尹膺善)을 종사했으며, 이후 4분의 영정을 추가로 봉안해서 모두 8분의 영정이 모셔져있다.
병산영당은 솟을삼문과 영당으로 구성되어 있고, 이원우(李元雨)가 쓴 ‘屛山影堂’이라는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