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연집 ()

한문학
문헌
조선 후기 학자 김창흡의 시 · 서 · 제문 · 일록 등을 수록한 시문집.
문헌/고서
간행 시기
1732년(영조 8)
저자
김창흡(金昌翕)
편저자
김창흡(金昌翕)
권책수
원집(原集) 36권 18책, 습유(拾遺) 32권 16책
권수제
삼연집(三淵集)
판본
활자본, 목판본, 필사본
표제
삼연집(三淵集)
소장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장서각 등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삼연집』은 조선 후기 학자 김창흡의 시·서·제문·일록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본집은 원집 36권 18책, 습유 32권 1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의 문인이었던 유척기가 경상도관찰사 등을 지내면서 마련한 재원으로 1732년에 활자로 간행하였다. 저자가 21세부터 70세에 이르기까지 지은 많은 시문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중 많은 수의 시들은 저자의 학문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의
조선 후기 학자 김창흡의 시 · 서 · 제문 · 일록 등을 수록한 시문집.
서지사항

본집은 원집(原集) 36권 18책, 습유(拾遺) 32권 1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속 활자본(金屬活字本) · 목판본(木版本) · 필사본(筆寫本) 등으로 이본(異本)이 다양하다. 원집의 초간본(初刊本)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습유는 모두 필사본으로 전해지는데, 저자 김창흡(金昌翕)의 후손 김귀년(金貴年)이 소장하고 있으며, 이 외에도 국립중앙도서관,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등에 소장되어 있다.

편찬 및 간행 경위

『삼연집』은 1732년(영조 8)에 운각 활자(芸閣活字)로 처음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삼연집』에 수록된 「연보(年譜)에 의하면, 저자 김창흡의 제자었던 유척기가 경상도관찰사 등을 지내면서 마련한 재원으로 1732년에 활자로 간행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후 현손(玄孫) 김달순(金達淳)이 원집에 빠진 시문을 모으고 연보 2권을 덧붙여 편집했고, 이를 종5대손 김수근(金洙根)이 1854년에 간행하였다. 1976년 후손들이 이 문헌을 모두 영인(影印)하고, 유상(遺像) · 유필(遺筆) 및 사평(史評)과 가사(家史)를 덧붙여 출판한 바 있다.

구성과 내용

원집의 권1∼16에는 시, 권17∼22에 서(書), 권23에 서(序), 권24에 기(記), 권25에 제발(題跋), 권26에 잡저(雜著), 권27∼28에 묘지명(墓誌銘), 권29에 신도비명(神道碑銘) · 묘갈명(墓碣銘), 권30에 묘표(墓表), 권31 · 32에 제문, 권33에 잡록(雜錄) · 일록, 권34에 일록, 권35에 일록 · 만록(漫錄), 권36에 만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권1~16에 수록된 시는 1673년(현종 14) 21세에 지은 작품에서부터 1722년 70세에 지은 절필시(絶筆詩)[「絶筆{壬寅}」]까지 연대순으로 수록되어 있다. 저자가 살았던 강원도 철원의 삼부연(三釜淵), 한강 상류의 저자도(楮子島) 등에서 지은 시가 많으며, 금강산과 강원도 일대 등을 다니면서 지은 시도 많이 실려 있다. 또한 당대 문인들과 차운(次韻)한 시도 다수 수록되어 있어, 노론(老論)을 대표하는 가문이었지만 소론(少論)이나 중인(中人)들과도 활발하게 교류했던 저자의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습유의 권1∼11에는 시, 권12에는 과체시(科體詩), 권13∼22에는 서, 권23에는 서 · 기, 권24에는 제발 · 설(說) · 잡저, 권25에는 묘지명 · 묘표 · 행장(行狀) · 제문, 권26에는 제문 · 고문(告文) · 잡록 · 일록, 권27 · 28에는 일기(日記), 권29에는 만록, 권30에는 「태극문답(太極問答)」, 권31에는 어록(語錄), 권32에는 부록(附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끝에는 연보가 상 · 하권으로 나누어져 실려 있다.

권34~35의 일록은 김창흡의 학문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 자료를 보면 그는 둘째 형인 김창협(金昌協)과 함께 이황(李滉)이이(李珥)의 학설을 비판적으로 절충(折衷)하는 태도를 보인다. 또 당시 학계의 주된 논쟁의 쟁점이 되었던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에 관하여, 김창협이 호론(湖論)을 지지한 것과는 달리, 김창흡은 낙론(洛論)으로 기우는 태도를 보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태극문답」에서는 태극이 이일분수(理一分殊)임을 말하고, 주희(朱熹)가 『중용』의 「천명지위성장(天命之謂性章)」에 대해 주(註)를 단 것에 따라 사람의 성품[人性]이 같고 다름[同異]를 논하고 있다. 이 글에서 그는 사람의 품격[人品]을 성인(聖人)과 대현(大賢) · 군자(君子) · 선인(善人) · 속인(俗人) · 소인(小人) 등 6등급으로 나누어 논하였다.

어록 등에는 성리학(性理學)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그의 폭넓은 관심이 깊이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유 · 불 · 도에 대해 논하면서, “대체로 유(儒)에 대한 말은 주자가 가장 자세하게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율곡이 가장 자세히 했다. 주자는 젊어서부터 그 도를 존중하고 그 사람을 스승으로 삼았다. 도 또한 그 말에 대하여 충분히 연구하여 나온 것이다. 나도 이 경계에 대하여 자못 소견(所見)이 있다.”라고 하여 그의 학문적인 근원을 밝혔다.

잡저에서는 당시 이현익(李顯益)이 동물의 도덕성편득(道德性偏得)을 주장한 것에 대해, “범과 늑대는 그 새끼를 사랑하지만 다른 동물에 대해서는 잔인하고 포악하며, 벌과 개미는 임금과 신하[君臣]의 관계가 있지만 효는 듣지 못하였다. 자(慈)와 충(忠)은 진실로 말살할 수 없지만 원초(原初)에 준 전(全)은 어찌 이에서 그칠 것인가.”라고 하여, 인 · 물성(人物性) 오상구득설(五常俱得說)을 주장하여 반대하였다. 또, 그 성선(性善)의 주장에 동조하여 논리를 개진하였다.

의의와 평가

정조가 『일득록(日得錄)』에서, 김창흡의 문장이 우리나라의 문체를 아주 크게 변화시켰다고 언급하였을 정도로, 김창흡의 문장은 당대 사회에 널리 퍼졌다. 김창흡의 시 또한 높은 평가를 받아 당대의 으뜸으로 일컬어진다. 그의 시에 대해 정조는 “맑고 메말랐다[淸而枯].”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그가 평양의 부벽루에 올라 지은 시가 유명한데, 다음과 같다. “설악산에 숨어 사는 나그네가/관서에서 다시 멋대로 노닌다네/몸을 따르는 것은 맑은 달빛이요/밤을 택한 것은 높은 누각이기 때문/칼춤을 추자 물고기가 조용한데/술잔이 돌자 은하수가 흐른다/닭 우는 새벽 돌아보고 일어나/고운 배에 흥을 머물러 둔다네.”

『삼연집』은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있어 학술상 · 문학상 여러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참고가 된다.

참고문헌

단행본

이종묵, 『우리 한시를 읽다』(돌베개, 2009)

논문

김남기, 「三淵 金昌翕의 詩文學 硏究」(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1)
최유진, 「三淵 金昌翕의 哲學的 詩世界 硏究」(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5)

인터넷 자료

한국고전종합DB: 삼연집 해제(https://db.itkc.or.kr/)
관련 미디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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