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극일(克一), 호는 용담(龍潭). 손위(孫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손수창(孫秀昌)이고, 아버지는 손형(孫蘅)이다.
1561년(명종 16)에 식년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일찍이 아버지가 병환을 앓자 그 인분을 맛보아 병의 정도를 가늠하고 이윽고 목욕재계하고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자신에게 병을 달라’고 하늘에 기원하자 과연 그 아버지의 병이 나았다. 이처럼 효성이 지극하여 그 소문이 널리 퍼지자 청홍도(淸洪道)에서 왕에게 아뢰어 참상직(參上職)을 내려 퇴폐해가는 풍속을 바로잡는 데 규범이 되도록 하였다.
이 일로 하여 1562년에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에서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으로 승직되었다. 이에 주위에서는 시기하는 자들도 있었으나 부지런히 봉공(奉公)하여 남원부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