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며 충청북도 천태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고려 명종대 원각국사(圓覺國師) 덕소(德素)가 왕명으로 주석하였고 이곳에서 입적하여 그를 기념하는 비가 1180년(명종 10)에 건립되었으며 현재에도 남아있다. 비가 일부 파손되고 결락이 많은 편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 충청도 옥천군 편에 한문준(韓文俊)이 찬술한 사실이 확인된다. 원각국사가 주석하기 전에 이미 사찰이 운영되고 있었으며 그가 주석하면서 중창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설에는 신라 문무왕대 창건되었다고 하나 정확하지 않다.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이 일어나 홍건적들이 황해도를 건너서 개경까지 육박하자, 왕은 이 절로 피난하여 국태민안의 기도를 계속하는 한편, 이원(伊院) 마니산성에 근위병을 포진하여 놓았다. 이 절의 맞은편에는 팽이를 깎아 놓은 듯한 뾰족한 봉우리가 있는데, 왕은 그 봉우리 위에 왕비를 기거하도록 해 놓고 옥새를 맡겨 두었다. 그 뒤 마니산성의 근위병들이 홍건적을 함정에 빠뜨려 무찌르고 개경을 수복하여 난을 평정하자, 공민왕은 부처님께 감사드리고 평군민안(平君民安)이 되었으니 절 이름을 영국사로 바꾸라 하고 현판을 써 준 뒤 떠났다 한다.
또, 일설에는 조선 태조 때 세사국사(洗師國師)가 산 이름을 지륵으로, 절 이름을 영국사로 하였다 하나 신빙성이 없다. 그 뒤 1893년(고종 30) 춘계(春溪) 등이 삼축당(三祝堂)을 중수하였으며, 1934년 영동군수 이해용(李海用) 등이 힘을 모아 사찰을 중수하였다. 1942년에 옛 절터에 있던 삼층석탑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고, 1979년에는 법산(法山)이 대웅전과 요사 등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은 1980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중요 국가유산으로는 1971년 보물로 지정된 영국사 삼층석탑, 영국사 원각국사비,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 영국사 승탑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양식상 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승탑과 원각국사비는 고려시기 제작된 것이다.
이 밖에도 영국사 영산회 후불탱이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이는 17세기 전반부터 18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불화 양식의 흐름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이 절에는 197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1000살 가량의 은행나무가 있으며, 절을 중심으로 주변에는 높이 3.5m의 석성지(石城址)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