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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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한문학
인물
고려전기 동문선에 수록된 오언율시 2수와 칠언율시 1수 등을 저술한 학자. 문인.
이칭
덕전(德全)
시호
현정(玄靜)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133년(인종 11)
사망 연도
미상
본관
고창(高敞)
목차
정의
고려전기 동문선에 수록된 오언율시 2수와 칠언율시 1수 등을 저술한 학자. 문인.
개설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덕전(德全). 선대는 고창오씨 시조인 한림학사 오학린(吳學麟)이고, 할아버지는 직한림(直翰林) 오질(吳質)이며, 아버지는 주1 구당사(句當使) 오인정(吳仁正)이다. 오세공(吳世功) · 오세문(吳世文)의 아우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명종과거에 급제하였으나 성격이 소탈하고 거리낌이 없어 세상에 용납되지 못하였다. 친우 이인로(李仁老)가 세번이나 추천하였으나 끝내 벼슬에 오르지 못하였다.

그는 당시 18세였던 이규보(李奎報)에게 53세의 나이로 주2를 허락하였다. 이른바 주4의 한 사람으로 이인로 등과 시주(詩酒)로 즐겼다.

만년에는 외할아버지의 출생지인 주5으로 제고사(祭告使)의 축사(祝史)가 되어 역마를 타고 가 그곳에 살면서 서울로 돌아오지 않았고, 마침내 가난에 시달리다 죽고 말았다.

『주역』을 암송하고 육경에 박통할 정도로 유학 경전에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시문은 주6주7의 체(體)를 체득하였다. 이규보는 그의 시를 주8이라 평하였고, 최자(崔滋)주9라고 평한 바 있다. 또한 글씨에도 뛰어났다.

경기체가 「한림별곡(翰林別曲)」 제3장 “오생유생(吳生劉生) 양선생(兩先生)의 오생유생(吳生劉生) 양선생(兩先生)의 위 주필(走筆)○경(景)긔엇더ᄒᆞ니잇고(오생 유생 두 선생의 오생 유생 두선생의 아, 붓 놀리는 모습 그 어떠합니까?)”에서 오생은 바로 오세재를 가리킨다.

오세재는 명종시대 문신수난기를 당하여 현실에 타협 내지는 조화하지 못하고 문학과 시주에 탐닉함으로써 자신의 고민을 해소하려 한 것이다. 그러한 그에게 이규보는 나이를 떠난 진정한 벗이었다. 이규보 역시 그의 재주를 아끼고 삶을 애석히 여겨 「오선생덕전애사(吳先生德全哀詞)」를 지어 추모하였다.

「오선생덕전애사(吳先生德全哀詞)」에서 이규보는 오세재를 복양선생(濮陽先生)이라 부르고, 친구 아닌 문하생의 입장에서, 주10이 죽자 그 문인들이 정절선생(靖節先生)이라 주11한 예를 따라, 현정선생(玄靜先生)이라 사사로이 시호하여 영전에 바쳤다. 현재 전하는 작품으로는 『동문선』에 오언율시 2수, 칠언율시 1수가 있다.

참고문헌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고려사(高麗史)』
『동문선(東文選)』
「오세재소론」(윤영옥,『영남어문학』8, 1981)
주석
주1

제주도에 설치된 고려시대의 도(道)

주2

나이에 거리끼지 않고 허물없이 사귄 벗. 우리말샘

주3

고려 후기에 명리(名利)를 떠나 사귀던 일곱 선비. 중국 진나라 때의 죽림칠현에 상대하여 이인로, 오세재, 임춘, 조통, 황보항(皇甫抗), 함순(咸淳), 이담지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말샘

주4

죽림고회(竹林高會). 고려 후기에 명리(名利)를 떠나 사귀던 일곱 선비. 중국 진나라 때의 죽림칠현에 상대하여 이인로, 오세재, 임춘, 조통, 황보항(皇甫抗), 함순(咸淳), 이담지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말샘

주5

지금의 경주(慶州)

주6

중국 당나라의 문인ㆍ정치가(768~824). 자는 퇴지(退之). 호는 창려(昌黎).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변려문을 비판하고 고문(古文)을 주장하였다. 시문집에 ≪창려선생집≫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7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712~770). 자는 자미(子美). 호는 소릉(少陵)ㆍ공부(工部)ㆍ노두(老杜). 율시에 뛰어났으며, 긴밀하고 엄격한 구성, 사실적 묘사 수법 따위로 인간의 슬픔을 노래하였다. ‘시성’으로 불리며, 이백(李白)과 함께 중국의 최고 시인으로 꼽힌다. 작품에 <북정(北征)>, <병거행(兵車行)>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8

힘차고 굳셈

주9

넉넉하고 원만함

주10

중국 동진의 시인(365~427). 이름은 잠(潛).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연명은 자(字). 405년에 팽택현(彭澤縣)의 현령이 되었으나, 80여 일 뒤에 <귀거래사>를 남기고 관직에서 물러나 귀향하였다.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으며, 당나라 이후 육조(六朝) 최고의 시인이라 불린다. 시 외의 산문 작품에 <오류선생전>, <도화원기#GT#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1

문장과 도덕이 뛰어난 선비이나 지위가 낮아 나라에서 시호를 내리지 아니할 때, 그 선비에게 친척이나 고향 사람 또는 제자들이 올리던 시호. 우리말샘

집필자
박노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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