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

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쌍릉.
이칭
이칭
태강릉(泰康陵)
유적/고인돌·고분·능묘
양식
쌍릉
건립 시기
1575년(선조 8)
관련 국가
조선
관련 인물
명종|인순왕후
소재지
서울특별시 노원구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1970년 05월 26일 지정)
소재지
서울 노원구 화랑로 681 (공릉동)
내용 요약

강릉(康陵)은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쌍릉이다. 강릉의 서쪽에는 문종의 어머니 문정왕후의 태릉이 자리 잡고 있어 두 능역을 합하여 태강릉(泰康陵)이라 부르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66년에 강릉과 태릉 사이에 태릉선수촌이 들어서면서 산릉의 많은 면적을 차지하였으나,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에 선수촌을 이전하고 능역을 되살리고 있다.

정의
서울특별시 노원구에 있는 조선 제13대 명종과 인순왕후 심씨의 쌍릉.
건립경위

명종은 어머니 문정왕후의 삼년상을 마치고 며칠 지나지 않은 1567년 6월 28일에 창덕궁의 양심합(養心閤)에서 승하하였다. 양주(楊州)에 있는 문정왕후의 태릉(泰陵) 동쪽에 능역을 조성하고, 능호를 강릉(康陵)이라 하였다. 명종의 국장은 9월 22일에 이루어졌다.

1575년(선조 8) 2월에 인순왕후가 승하하자, 명종의 능침 동쪽에 쌍릉으로 능침을 마련하고, 4월 28일에 장사를 지냈다. 인순왕후를 합부할 때에 가정자각(假丁字閣)을 조성하여 왕후의 상례를 지내고 삼년상을 지낸 후에, 가정자각을 철거하고 명종의 제례를 지내는 주1에 합하여 제사 지내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가정자각의 제도는 광릉(光陵)에서 정립된 것을 따른 것이다.

변천

1571년(선조 4)에 명종의 삼년상을 막 마쳤을 무렵, 화재가 일어나 정자각이 소실되었다. 재건할 때에 정전 3칸에 좌우 익각을 갖추고 3칸으로 배위청을 형성하여 8칸 규모 정자각으로 건립되었다. 임진왜란으로 능상에도 불탄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정자각은 소실되었다. 1695년(숙종 21)에 중건하였는데, 당시 주2 박태상(朴泰尙)이 「중건상량문」을 지었다.

1571년에 정자각을 재건할 때 8칸에 주3으로 건립하였으나, 1695년에 중건하면서 정전 좌우 익각을 제거하고 정전 3칸에 배위청 3칸으로 총 6칸으로 건립하였다. 1753년(영조 29)에 희릉 · 효릉 · 장릉 · 태릉과 함께 강릉에도 표석을 세우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형태와 특징

강릉의 두 능침은 주4으로 북북서를 등지고 남남동을 바라보도록 배치되었다. 두 능침은 주5으로 조성하였으나 봉릉에는 주6을 설치하고 난간석으로 연결하였다. 능침의 후면에는 주7으로 둘러싸고, 정면에는 주8을 각각 설치하였다.

혼유석을 제외한 나머지 주9은 모두 합설하여 하나의 능침 제도로 조성하였다. 능 아래 59보 지점에 정자각이 있으며, 남쪽으로 74보 지점에 주10이 있다. 정자각의 동쪽에는 주11이 있으며, 그 안에 주12이 있다. 수라간과 수직방은 소실되었다.

의의 및 평가

선릉을 조성하면서 대왕릉에는 병풍석을 두르고 왕후릉에는 난간석만 둘렀으나, 강릉에는 대왕릉과 왕후릉 모두 병풍석을 설치하고 난간석으로 연결하였다. 병풍석과 난간석 및 능상에 세워진 석물의 제도는 『 국조오례의』의 규례에 따르고 있다.

참고문헌

원전

『강릉개수도감의궤(康陵改修都監儀軌)』
『강릉지(康陵誌)』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춘관통고(春官通考)』

단행본

『조선왕릉종합학술조사보고서 Ⅳ』(국립문화재연구소, 2013)

인터넷 자료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https://royaltombs.cha.go.kr/)
위키실록사전(http://dh.aks.ac.kr/sillokwiki)
주석
주1

왕릉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봉분 앞에 ‘丁’ 자 모양으로 지은 집.    우리말샘

주2

조선 시대에 둔 예조의 으뜸 벼슬. 공양왕 원년(1389)에 예의판서를 고친 것으로 정이품 문관의 벼슬이다.    우리말샘

주3

위 절반은 박공지붕으로 되어 있고 아래 절반은 네모꼴로 된 지붕.    우리말샘

주4

묏자리나 집터 따위가 해방(亥方)을 등지고 사방(巳方)을 바라보는 방향. 또는 그렇게 앉은 자리. 북북서를 등지고 남남동을 바라보는 방향이다.    우리말샘

주5

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    우리말샘

주6

능(陵)을 보호하기 위하여 능의 위쪽 둘레에 병풍처럼 둘러 세운 긴 네모꼴의 넓적한 돌. 겉에 12신(神)이나 꽃무늬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주7

능, 원, 묘 따위의 무덤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    우리말샘

주8

넋이 나와 놀도록 한 돌이라는 뜻으로, 상석(床石)과 무덤 사이에 놓는 직사각형의 돌을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9

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물건. 석인(石人), 석수(石獸), 석주, 석등, 상석 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0

능(陵), 원(園), 묘(廟), 대궐, 관아(官衙) 따위의 정면에 세우는 붉은 칠을 한 문(門).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지붕 없이 붉은 살을 세워서 죽 박는다.    우리말샘

주11

비를 세우고 비바람 따위를 막기 위하여 그 위를 덮어 지은 집.    우리말샘

주12

무덤 앞에 세우는 푯돌. 죽은 사람의 이름, 생년월일, 행적, 묘주 따위를 새긴다.    우리말샘

집필자
신지혜(건축문헌고고스튜디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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