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종은 관등이 파진찬(波珍飡)으로, 딸이 효성왕의 후궁이 되어 왕의 총애가 날로 더해감에 왕비가 이를 몹시 질투하여 족당(族黨)과 함께 죽이고자 하므로 이에 왕비를 원망하여 종당(宗黨)을 모아 반란을 꾀하였다.
이로 인해 740년(효성왕 4) 8월에 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이 난은 왕의 외척세력간의 갈등에 의한 것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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