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벌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안산군수, 여산군수, 단양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제백(濟伯)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23년(중종 18)
사망 연도
1616년(광해군 8)
본관
고령(高靈)
주요 관직
안산군수|여산군수|단양군수
정의
조선 전기에, 안산군수, 여산군수, 단양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제백(濟伯). 신숙주(申叔舟)의 현손이며, 좌의정 신용개(申用漑)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결사 신한(申瀚)이고, 아버지는 가평군수 신여주(申汝柱)이며, 어머니는 우의정 이명구(李明龜)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52년 (명종 7)에 효자로 천거받아 사재감참봉(司宰監參奉)이 되었고, 그 뒤 광흥창봉사(廣興倉奉事)·장악원직장(掌樂院直長)·종부시주부(宗簿寺主簿) 등을 지내고 직산현감·개성부도사·안산군수·여산군수·단양군수 등의 외직을 거쳤다.

이 후 1594년(선조 27)에 세자익위사사어(世子翊衛司司禦)와 선공감판관(繕工監判官)이 되었다가 병으로 사직하고 향리에 돌아갔다.

80세 때 비로소 국가의 전례(典禮)에 의해 당상관의 품계에 올랐다. 또 10년이 지난 뒤에 아들 양주목사 신응구(申應榘)가 자기 아버지의 나이가 90이 되었으므로 은전을 베풀어줄 것을 아뢰자 왕이 실직제수(實職除授)를 명하여 1612년(광해군 4)에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가 되었다. 인품이 근엄하고 겸손하였으며, 직산현감 자리를 떠난 뒤 읍민이 송덕비를 세우자, 이를 철거하도록 하였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청음집(淸陰集)』
집필자
이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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