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우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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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인물
일제강점기 때, 토월회, 조선연극사, 동양극장 등에서 무대미술을 담당한 미술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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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때, 토월회, 조선연극사, 동양극장 등에서 무대미술을 담당한 미술인.
개설

1923년 극단 토월회(土月會)에 참여하여 이승만(李承萬)과 함께 새로운 무대장치를 만들기 시작하였으며, 신파극의 일본식 무대가 판을 치고 있던 때에 사실적인 무대미술을 시도하여 연극의 면모를 일신하는 데 절대적인 기여를 한 초창기의 본격적 무대미술가였다.

토월회 때 만든 주요작품은 <춘향전>·<산송장>·<농 속에 든 새> 등 60여 편 이상이며, 토월회가 활동을 정지하자 극단 조선연극사(朝鮮硏劇舍)에서 무대미술부를 담당하였다.

1920·1930년대만 하더라도 전문적인 무대미술가가 드물었기 때문에, 원우전은 사실상 주요극단들의 작품을 거의 맡아하였다. 조선연극사의 무대장치를 하면서 신흥극장(新興劇場)의 창립단원(1930)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1935년 동양극장이 개관되자 무대장치를 맡아하였다.

즉, 동양극장 전속단체인 청춘좌(靑春座)·호화선(豪華船)의 무대미술을 담당하였다. 동양극장 이후에도 아랑(阿娘)·성군(星群) 등 극단의 작품을 주로 맡아서 하였다.

이러한 활약은 광복 직후까지 지속되어 극단 백화(白花) 등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며, 1950년 6·25동란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난하여 신협(新協)·국립극단의 몇몇 작품의 무대장치를 하였다.

걸개그림 같은 배경화에 머물러 있던 우리 나라 무대장치를 리얼하면서도 입체적으로 끌어올린 장본인이다. 1942년부터 개최된 조선연극문화협회 주최 연극경연대회에서 제1회 무대장치상을 탄 바 있다.

참고문헌

『한국신극사연구(韓國新劇史硏究)』(이주현, 서울대학교출판부, 1966)
집필자
유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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