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대재(大哉), 호는 경도암(景陶庵). 유희증(兪希曾)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석(兪晳)이다. 아버지는 유명홍(兪命弘)이며, 어머니는 이윤(李綸)의 딸이다. 유명중(兪命重)에게 입양되었다.
판관으로서 1739년(영조 15)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正言)이 되고, 1741년에 헌납(獻納), 이듬해에 수찬(修撰)·교리(校理) 등을 역임하였다. 수찬에 재직하고 있을 때 전염병이 창궐하여 사망자가 속출하자, 하늘의 뜻을 헤아려 임금은 스스로 반성하여 올바른 정치를 행하도록 상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그 뒤 대동찰방(大同察訪)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743년에 영의정 김재로(金在魯)의 요청으로 사헌부장령에 제수되고, 동지사·사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헌납(獻納)·사간·응교·세자시강원필선·집의·보덕 등을 거쳐 1749년 승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