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중오(重吾), 호는 괴애(乖厓). 아버지는 증 호조참판 유희잠(柳希潛)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원(金元)의 딸이다.
1646년(인조 24)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4년(효종 5)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 춘추관기사관, 사헌부의 지평·장령, 사간원의 정언, 상의원정(尙衣院正) 등을 역임하고, 외직으로 결성·단성 등지의 현감, 밀양부사·능주목사, 길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정언으로 있으면서 당시 병조판서로서 군신을 이간하는 상소를 올렸다 하여 김석주(金錫胄)를 논핵, 좌상 민희(閔熙)로부터 언책(言責)을 다한다는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효종이 죽었을 때에는 복제수의(服制收議)에 있어 송시열(宋時烈)의 기년설(朞年說)에 대하여 반론을 들고 후일 예송(禮訟)이 있을 것을 예언하기도 하였다. 유지가 죽자 숙종은 제문을 내려 치제하였다. 저서로 『괴애집(乖厓集)』 2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