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흥양(興陽). 자는 연숙(淵叔), 호는 취흘(醉吃). 아버지는 사섬시부정(司贍寺副正) 유몽표(柳夢彪)이며, 어머니는 고성이씨(固城李氏)로 예조참판 이택(李澤)의 딸이다. 가학으로 약관이 되기 이전에 학문이 성취되었다.
1588년(선조 2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597년에 정시문과에 병과로 합격하여 승문원·예문관을 거쳐 김상헌(金尙憲)·홍서봉(洪瑞鳳) 등과 호당(湖堂)에 재직하였다. 그 뒤 사간원정언·사헌부집의를 거쳐 예조참의·대사간·대사성 등의 청직을 지냈다.
1616년(광해군 8)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3년상을 예대로 치른 다음 이이첨(李爾瞻)을 처벌하도록 주청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두문불출하고 독서에 열중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 청하(淸河)로 귀양갔으나 곧은 선비라 하여 바로 방환되었고, 병조참판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정구(李廷龜)와 같은 나이로 친분이 두터워 문학적 교유를 많이 하였다. 고산(高山) 삼현영당(三賢影堂)에 봉안되었다. 저서로는 『취흘집(醉吃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