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성박(聖博). 대사헌 윤진(尹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무교(尹懋敎)이다. 아버지는 윤동휴(尹東休)이며, 어머니는 권필형(權弼衡)의 딸이다.
1783년(정조 7)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듬해 진사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786년 홍문관에 등용되어 1788년 교리로서 경기감사 김사목(金思穆), 파주목사 정언형(鄭彦衡)의 처벌이 잘못임을 논박하다가 파직당하였다.
이듬해 복직하여 『장릉지(莊陵誌)』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수찬이 되어 천주교를 배척할 것을 상소하여 천주교의 서적들을 소각하게 하였다.
그 뒤 승지를 거쳐 1799년 예조참의·이조참의가 되었다. 이듬해 필선을 거쳐 1802년(순조 2) 이조참판·정조실록찬수당상·도승지·한성부판윤 등을 지냈다. 1803년 공조판서를 거쳐 1804년 예조판서·악기조성당상(樂器造成堂上)을 지냈다. 다시 한성부판윤이 된 뒤 대사헌이 되었으나 1개월 뒤 조참(朝參)에 불참하여 파직당하였다.
이듬해 판의금부사·상호군을 지내고 4월에 죽었다. 시호는 효헌(孝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