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영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황해감사, 평안감사, 함경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신보(愼甫)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34년(인조 12)
사망 연도
1710년(숙종 36)
본관
전주(全州)
주요 관직
황해감사|평안감사|함경감사
관련 사건
기사환국
정의
조선 후기에, 황해감사, 평안감사, 함경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신보(愼甫). 군수 이수(李綏)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갱생(李更生)이다. 아버지는 이명하(李鳴夏)이며, 어머니는 성여관(成汝寬)의 딸이다. 송준길(宋俊吉)의 문인(門人)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75년(숙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정언·지평·헌납, 영천군수·경상우도암행어사·경상감사, 승지, 황해감사·평안감사·함경감사, 도승지, 강화유수·경기감사 등을 역임하였다.

1682년(숙종 8) 수원부사로 있으면서 스승인 송준길이 관작을 추탈당하자, 그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 하여 신변(伸辯)의 소(疏)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비방을 받았다. 1689년(숙종 15)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송시열(宋時烈)·김익훈(金益勳)의 당으로 지목되어 창성(昌城)으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풀려났다.

1698년 승지로 있을 당시 유망(流亡)하는 백성들의 안집책을 건의하기도 하였으며, 1701년에는 마천령(摩天嶺)·철령(鐵嶺)·성진(成津) 등을 요새화하여 북방수비에도 힘쓸 것을 주장하였다.

1702년(숙종 28) 강화유수로서 강화 토성(土城)의 개수(改修) 문제를 건의하여 갑곶진(甲串津)의 석성(石城)을 보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당시 알성시(謁聖試)의 시관이 되어, 사위인 김만근(金萬謹) 등이 급제된 일로 지방 유생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숙종실록(肅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집필자
장필기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