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춘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제원도찰방, 사근도찰방, 음성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응인(應仁)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32년(중종 27)
사망 연도
1592년(선조 25)
본관
전주(全州)
주요 관직
제원도찰방|사근도찰방|음성현감
관련 사건
임진왜란
정의
조선 전기에, 제원도찰방, 사근도찰방, 음성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응인(應仁). 광평대군(廣平大君)의 5대손이며, 아버지는 서부주부(西部主簿) 이길(李佶)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561년(명종 16) 사마시에 합격한 뒤 유일(遺逸: 학식과 덕망이 있어 과거를 거치지 않고 높은 관직에 임명될 수 있는 인물)로 천거되어 제원도찰방(濟源道察訪)·사근도찰방(沙斤道察訪)을 역임하였다. 그 뒤 음성현감을 거쳐 1592년 함열현감에 임명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철원에서 적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관직에 있을 때에는 청렴하다는 평을 들었다.

참고문헌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집필자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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