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해(靑海). 자는 덕유(德裕). 개국공신 이지란(李之蘭)의 후손이며, 이명로(李明老)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문주(李文柱)이다.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 이핵(李翮)이며, 어머니는 이승효(李承孝)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등용되고, 병조좌랑·부안현감을 거쳐 홍주목사로 있으면서 백성들의 토지를 빼앗은 권문세가의 횡포를 조정에 알려 토지를 백성에게 반환하도록 하였다. 충주·의주 등 각 지방관을 지내고, 수원부사가 되어 백성을 잘 다스림으로써 왕으로부터 표리(表裏: 속과 겉의 옷감)가 하사되었다.
1714년 지평·장령·정언 등을 거쳐 1718년 승지에 이어 형조참의가 되고, 이듬해 여주목사, 뒤에 함경도병마절도사를 거쳐 1721년(경종 1) 한성부좌윤, 이어 형조참판이 되었다. 이 해 이진유(李眞儒) 등 소론에게 배척을 당하여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향에서 은거생활을 하였다.
1725년(영조 1) 사직을 거쳐 자헌대부(資憲大夫)로 병조판서에 특진되고, 이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1728년 공조판서로서 이인좌(李麟佐)의 난의 평정을 도와 왕의 신임을 받았으며, 도총관·지의금부사를 지냈다. 뒤에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민(貞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