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맹희(孟希). 호는 칠우(七迂). 아버지는 진사 이이집(李以鏶)이며, 어머니는 울산김씨(蔚山金氏)로 김이현(金履賢)의 딸이다. 아버지에게 학문을 전수받았다.
일찍이, 여러 차례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중년에 장성 동쪽에 정사(精舍)를 짓고 강학에 전념하였다. 이 때, 이윤성의 학행이 인정되어 관찰사 이서구(李書九)에 의하여 조정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1827년(순조 27) 대책(對策)으로 증광문과에 급제, 다음 해 주부로 임명된 뒤 감찰·지평을 역임하였다. 1829년 태천현감으로 부임하여 오교(五敎)를 선양하고 흥학(興學)한 공적이 뛰어나 관찰사 김학순(金學淳)에 의하여 조정에 포계(褒啓)되었다.
1831년 현아(縣衙)에서 세상을 뜨자 이민(吏民)이 그를 애모하여 송덕비를 세웠다. 평소 이기설 및 『주역』, 율려(律呂)를 깊이 연구하였다. 저서로 『칠우집(七迂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