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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행총재(海行摠載)

조선시대사문헌

 고려·조선시대 통신사의 사신이나 포로 및 표류 등으로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의 기행록을 집성한 총서.   기행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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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조선시대 통신사의 사신이나 포로 및 표류 등으로 일본에 다녀온 사람들의 기행록을 집성한 총서.기행문.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28책. 사본. 넓은 의미로 일본에 다녀온 기행록을 총칭해 해행총재라고도 한다.
체재와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서문이나 발문은 없고 각 저자별 저술들을 28책으로 엮은 본문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선정 기준이나 저작별 서열순에 대한 기준을 알 수가 없다.
책수에 따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제1책 정몽주(鄭夢周)의 『봉사시작 奉使時作』, 신숙주(申叔舟)의 『봉사시작 奉使時作』·『해동제국기 海東諸國記』, 제2·3책 김성일(金誠一)의 『해사록 海槎錄』, 제3∼6책 신유한(申維翰)의 『해유록 海游錄』 상·중·하, 제7책 강항(姜沆)의 『간양록 看羊錄』 등이 있다.
제8책에는 경섬(慶暹)의 『해사록 海槎錄』 상·하, 제9책 오윤겸(吳允謙)의 『동사상일록 東槎上日錄』, 제10책 이경직(李景稷)의 『부상록 扶桑錄』, 제11책 강홍중(姜弘重)의 『동사록 東槎錄』, 제12책 임광(任絖)의 『병자일본일기 丙子日本日記』, 부록으로 이지항(李志恒)의 『표주록 漂舟錄』, 제13·14책 김세렴(金世濂)의 『해사록 海槎錄』 상·하 등이 있다.
제15책에는 김세렴의 『사상록 槎上錄』, 제16책 황호(黃호)의 『동사록』, 제17책 조경(趙絅)의 『동사록』·신유(申濡)의 『해상록 海上錄』 상, 제18책 『해상록』 하와 작자 미상의 『계미동사일기 癸未東槎日記』 상·중, 제19·20책 남용익(南龍翼)의 『부상록 扶桑錄』 상·중, 제21책 남용익의 『문견별록 聞見別錄』, 제22책 홍우재(洪禹載)의 『동사록 東槎錄』 등이 있다.
제23책에는 김지남(金指南)의 『동사일록』, 제24책 조엄(趙曮)의 『조제곡일기 趙濟谷日記』, 제25∼28책 조엄의 『해사일기』 등으로 엮어져 있다. 대부분 일기 부분의 산문과 시로 되어 있는데 어떤 기록은 시가 전혀 없는 반면에 전편이 시로 구성된 예도 있다.
정몽주의 『봉사시작』은 일본에 파견된 사행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가 1377년(우왕 3) 9월에 출발, 이듬해 7월에 돌아오면서 쓴 시이다. 이 사행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한 일본측의 협조를 얻는 데에 목적이 있었으며, 귀환 때 많은 고려인(高麗人)을 데리고 왔다.
신숙주의 『봉사시작』은 신숙주가 일본에 다녀온 뒤 지은 것이다. 『해동제국기』도 신숙주가 일본에 사행으로 다녀온 뒤 1471년(성종 2)에 지은 것이다. 일본의 지세·국정, 교빙 내왕의 연혁, 조선 사신들에 대한 접대 등의 절목을 담은 것으로, 양이나 내용면에서 볼 때 사행록의 표본이 된다.
김성일의 『해사록』은 1590년(선조 23) 그가 일본에 통신부사로 다녀온 이듬해 지은 것이다. 시·서(書)·일기 등 내용이 다양하며 임진왜란 직전의 양국 관계를 잘 묘사하고 있다. 신유한의 『해유록』은 숙종 때 저자가 제술관(製述官)으로 가서 기행한 글이다.
그는 일본에 다녀온 뒤 그 곳의 지리·인정·풍속·제도에 관해 잘 기록했으며, 심지어는 초목까지도 기록하였다. 강항의 『간양록』은 1597년 저자가 의병 활동 중 일본에 끌려가 4년 간 후시미성(伏見城)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국해 쓴 기행문이다. 원래 『건거록 巾車錄』이라 했으나 저자의 문인 윤순거(尹舜擧)가 『간양록』으로 바꾸었다.
이 기록은 일본의 여지(輿地)·관호(官號)와 그들의 강약의 형세를 보고 몰래 본국에 부송해 선조에게 올린 것과, 자신의 섭란사적(涉亂事蹟) 및 그 곳에서의 술회, 증답한 시편을 첨부해 엮은 것이다. 경섬의 『해사록』은 저자가 1607년 통신부사로 일본을 왕복하면서 경험한 것을 일기체로 기록한 사행록이다.
상권에는 1월 12일 사명을 받고 예궐해 하직하던 일부터 5월 29일까지 일본 관동(關東)의 에도(江戶)에 머무른 약 5개월 간의 일이 수록되어 있다. 하권에는 6월 1일 일본 관백(關白)에게 조선국서를 전하는 의식을 논하던 일부터 7월 17일 귀국해 복명하던 일까지 약 3개월(윤6월 포함) 동안의 기사가 수록되었다.
일기가 끝난 다음 ○표로 표시해 줄을 바꾸고 일본에 관한 총론을 덧붙였다. 그 다음 회답 겸 쇄환사 동사원역록을 붙였다. 오윤겸의 『동사상일록』은 1617년(광해군 9) 통신사의 정사로 임진왜란 당시 포로가 된 조선 남녀를 쇄환하기 위해 약 4개월 동안 일본 내왕시의 경과와 견문, 그리고 그 지방의 형세와 요속(謠俗)을 날짜별로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이경직의 『부상록』은 1617년 통신정사 오윤겸 등과 함께 종사관으로 일본에 있는 조선인 쇄환 차 내왕한 104일 동안 왜인들과 겪었던 일을 일기체로 기록한 것이다. 강홍중의 『동사록』은 저자가 1624년(인조 2) 8월 20일부터 다음 해 3월 26일까지 통신부사로 일본으로 가 문견한 바를 수기(手記)로 상술한 것이다.
임광의 『병자일본일기』는 1636년 10월 6일부터 2월 25일까지 통신사로 일본에 왕복하면서 견문한 것을 기록한 일기이다. 그리고 『표주록』은 이지항 일행이 일본 북해도까지 배로 표류하다가 일본 관원들에게 구조를 받아 돌아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또, 끝에는 강항과 조완벽(趙完璧)의 이야기도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김세렴의 『해상록』은 1636년 8월 1일부터 이듬해 3월 9일까지 저자가 일본의 통신부사로 왕복한 동안의 일을 일기로 적은 글이다. 거쳐간 곳의 지형·풍속, 내왕한 인물과의 대화 내용, 각지의 지응(支應)·상사(上使)의 고시(告示) 등 그날 그날의 통신사 일행의 동정을 상세히 적고 있다.
이어 『문견잡록』에는 일본의 문물 제도를 싣고 있다. 또, 『사상록』은 저자가 사행하는 동안의 감회를 시제를 붙여 오언·칠언 절구로 적고 있다. 황호의 『동사록』은 저자가 1636년 8월 11일부터 이듬해 2월 25일까지 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뒤 경험한 일들을 기록한 것이다.
내용 대부분이 일본인들의 문물에 관심을 두었으며, 그 밖에 사신 일행의 처사, 피아 사이의 대화, 그 곳에 얽힌 내력 등에 대해 서술하였다. 그리고 여행중의 견문을 모아 「문견총록」이라는 제목으로 말미에 붙였다. 조경의 『동사록』은 저자가 1643년 (인조 21) 통신부사로 일본에 왕복한 동안의 경험을 시문으로 엮은 것이다.
신유의 『해사록』은 저자가 1643년 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다녀오는 동안에 있었던 감회를 적은 자작시와 정사·부사, 그 지역의 명류·명석(名釋)들과의 수창시(酬唱詩)를 모아 엮은 것이다. 특히, 저자가 시문에 뛰어났던 만큼 일본 기행에 관한 시집으로는 자못 빼어나다.
그리고 작자 미상의 『계미동사일기』는 1643년 통신사로 다녀온 삼사 이외의 다른 수종자가 쓴 것으로 추측된다. 내용은 일기체로 되어 보기에 편리하고, 특히 일본에 도착한 이후부터는 그 곳 산천의 경관이나 명승·고적 등을 자세하게 그렸다.
일본인들이 조선 사신들을 대하는 예의에 대해서도 일일이 관심을 보인 것을 보면, 상당히 주의깊게 다룬 글임을 알 수 있다. 남용익의 『부상록』은 저자가 1655년(효종 6) 통신사의 종사관으로 일본에 파견된 기간에 경험한 사실들을 적은 것이다.
상권에는 송시열(宋時烈)이 쓴 서문을 비롯, 사절의 좌차(座次) 및 명단을 적은 좌목(座目), 원역명수(員役名數), 당시의 서계(書契), 예단의 수량을 적은 물목, 해신(海神)에게 드리는 제해신축(祭海神祝)과 일본에서 공급받은 하정물목(下程物目), 그리고 시 등이 실려 있다. 하권에는 일본의 회답서계(回答書契) 등이 실려 있다.
남용익의 『문견별록』에는 저자가 그 곳에서 문견한 문물 제도에 관한 것을 기록하였다. 홍우재의 『동사록』은 1682년(숙종 8) 5월 4일부터 그 해 11월 14일까지 저자가 역관으로 임무를 마치고 무사히 귀경할 때까지 약 7개월 동안 그날 그날에 일어난 일을 기록해놓은 기행문 형식의 일기체이다.
저자가 겪은 일본의 문물과 외교교섭 과정에서의 피아의 예의 절차 등 비교적 번다할 정도로 상세히 기재하고 있다. 김지남의 『동사일록』은 1682년 5월 8일부터 11월 16일까지 일본에 통신사의 일행 중 역관의 자격으로 왕복한 저자의 문견록이다.
그는 일본 사신길에 처음 한학(漢學)의 자격으로 떠났지만 중도에서 압물통사(押物通事)가 되었다. 떠날 때부터 돌아올 때까지 중요한 사건과 그 곳 산천·지리·명승·고적·사찰 등에 대해 예리한 필치로 서술, 흥미있고 가치있는 기록을 담았다. 조엄의 『조제곡일기』는 저자가 일본을 왕복하면서 그 곳에 문견한 것을 일기 형식으로 기술한 것이다.
또, 『해사일기』는 그가 1763년(영조 39) 8월 3일부터 이듬해 7월 8일까지 일본에 통신사로 파견된 동안 몸소 겪었던 일들을 일기체로 서술한 것이다. 성대중(成大中)이 쓴 서문이 있고, 이어 수창록(酬唱錄), 각처서계(各處書契), 일본인들과 주고받은 글, 연화(筵話), 제문 등을 싣고 있다.
1909년부터 1916년까지 조선고서간행회(朝鮮古書刊行會)에서 고대로부터 조선시대까지 중요한 사료를 모아 조선군서대계(朝鮮群書大系)를 간행하였다. 그 중 속속편(續續篇, 제3∼6집)에 4책(활자양장본)으로 수록된 해행총재가 있는데, 여기에 실린 저술도 본서(28책)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거의 같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고전국역사업의 하나로 조선고서간행회에서 편찬한 해행총재를 1974년부터 1981년까지 12권(색인포함)으로 번역, 일반에게 보급하였다. 이 두 가지 해행총재에 실린 『사행일기』 또는 『표해록』 외도 비슷한 체재와 내용을 담은 기록들이 많이 전하고 있다.
즉, 김현문(金顯門)의 『동상록』, 홍치중(洪致中)의 『동사일록』, 정막비(鄭幕裨)의 『부상기행 扶桑紀行』, 작자 미상의 『일본일기 日本日記』, 송희경(宋希璟)의 『노송당일본행록 老松堂日本行錄』, 이지항(李志恒)의 『표주록 漂舟錄』, 정희득(鄭希得)의 『월봉해상록 月峰海上錄』, 노인(魯認)의 『금계일록 錦溪日錄』, 정경득(鄭慶得)의 『만사록 萬死錄』, 정존인(鄭存仁)의 『정유피난기 丁酉避難記』 등이 그것이다.
이들도 해행총재에 실린 것들과 버금가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어 똑같은 사료적 가치가 있다.
이와 같은 여러 종류의 기행록은 임진왜란 이전의 것은 적고 그 이후의 것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 1607년 대일국교정상화로 통신사절단이 일본에 파견되면서 이들에 의한 문견록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16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 조선인의 일본관, 일본의 문물 제도, 일본인들이 조선을 보는 시각 등을 살필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는 귀중한 책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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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 (1995년)
김성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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