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法住寺)의 말사이다. 720년(성덕왕 19)에 창건되었으나 창건자는 미상이다. 그 뒤 작은 암자로서 명맥만을 유지해오다가 임진왜란 직전에 영규(靈圭)가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하여 전소되었다.
1624년(인조 2) 다시 중건하여 극락전과 목불상(木佛像)을 조성하였고, 숙종 때에는 영규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서 이 절을 호국사찰로 지정하고 조헌(趙憲)과 영규 두 의병장의 영정을 그려서 극락전에 봉안하도록 하였다. 18세기 무렵 한 때 폐사되었다가 곧 중건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법주사 산외 말사로 용암사와 더불어 옥천군의 대표적 사찰로 꼽혀왔다.
그러나 1910년에 총독부에서 이들의 영정을 강탈해갔을 뿐 아니라, 불온사찰이라고 하여 탄압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하였다. 1934년 법당을 중수하였는데 그 내역을 기록한 〈법당중수기〉가 전해 온다. 그 뒤 1960년에 중수하였으며, 1985년 요사를 중수하고 법당 불상의 개금 불사를 한 뒤 이듬해 미륵입상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1992년 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하여 극락전이 불에 탔으며, 이 때 1624년 중건시 조성한 목조아미타여래좌상도 소실되고 말았다. 1994년 현재의 극락전을 새로 지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산신각·진영각·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극락전은 1624년의 중건 때 건립된 것으로 내부에는 아미타여래좌상과 후불탱화·신중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1992년 소실된 아미타여래좌상은 향나무로 만든 높이 90㎝의 불상으로, 1624년에 논산 쌍계사(雙溪寺) 북암(北庵)에서 조성하여 이 절로 옮겨온 것임이 복장기(腹藏記)에 의해서 밝혀졌다.
또, 복장유물로 《묘법연화경홍전서 妙法蓮華經弘傳序》 1권 등 총 6점의 문헌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1477년(성종 8) 화암사(花巖寺)에서 개판한 목판본 불경으로 서지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산신각도 1624년에 중건하였다. 극락전과 거의 같은 시대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