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학생연맹

  • 역사
  • 단체
  • 일제강점기
192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학생 단체.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김호일
  • 최종수정 2026년 02월 20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1925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학생 단체.

개설

사회주의계인 서울파의 후원으로 조직되었다.

연원 및 변천

1925년 5월 일부 민족주의 계열의 학생과 사회주의 계열의 학생들이 조선학생회(朝鮮學生會) 등 기존 학생 단체를 일축하고 독자적으로 조선공학회(朝鮮共學會)를 조직하였다.

그런데 일제 당국으로부터 조직 목적과 구성원들의 경향이 불온하다 하여, 같은 해 11월 해산을 당하고 말았다.

이에 회에 소속되었던 학생들은 사회주의계인 화요회계(火曜會系) · 북풍회계(北風會系) 등과 제휴를 모색하여, 조선학생과학연구회서울학생구락부를 각각 조직하였다.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 중 일부가 경성학생연맹을 조직한 것이다.

활동내용

주동 인물은 강신술(姜信述) · 이진기(李鎭基) · 강진호(康鎭昊) · 김동양(金東洋) · 이용화(李容華) · 김태홍(金太弘) · 남도희(南道熙) · 이규운(李奎運) · 김원표(金源表) · 손창주(孫昌周) · 박인식(朴燐式) · 김정로(金正魯) · 윤석원(尹錫源) · 안진훈(安璡勳) · 한기수(韓琦洙) · 이하선(李夏善) · 김춘희(金春熙) · 김상용(金相鏞) · 김병수(金炳洙) · 김기준(金基俊) 등이었으며, 수십 명의 재경 중등학교 이상의 학생들이 참여하였다.

창립 총회에서 선언 · 강령 및 집행 위원 21명을 선정하였다. 그리고 강령은 “우리 학생은 보편적 운동에 대한 수양의 촉진을 도(圖)하고, 우리 학생은 사회민중운동 통일에 대한 미래의 완전한 일꾼됨을 단련하기로 기약하고, 조선 학생계에 당면한 모든 문제에 대한 자결을 기하고, 조선 학생 상호간의 연락과 친목을 도하며 지식 교환을 기도한다”는 등의 내용으로 되어 있다.

1926년 4월 제1회 정기대회를 개최하여, 당시 사회에서 풍미하던 사회과학연구를 위한 월례회 · 독서회의 장려와 학생의 날에 관한 결의를 다졌다. 그러나 사회주의 파벌인 서울파의 영향 밑에 있어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였으며, 제1회 정기대회 이후의 활동은 명백하지 않다.

참고문헌

  • - 『한국사』22(국사편찬위원회, 1978)

  • - 『항일학생민족운동사』(정세현, 일지사, 1975)

  • - 「일제하 학생단체의 조직과 활동」(김호일, 『일제하 식민지시대의 민족운동』, 풀빛,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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