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천기원절 ()

근대사
제도
1897년 9월 17일(양력 10월 12일), 조선 왕조 제26대 왕인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새로운 연호인 광무(光武)를 채택하여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한 날.
제도/법령·제도
제정 시기
1897년 12월 2일
시행 시기
대한제국 시대
주관 부서
궁내부
내용 요약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은 1897년 9월 17일(양력 10월 12일), 조선 왕조 제26대 왕인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새로운 연호인 광무(光武)를 채택하여 황제로 즉위한 날이다. 계천기원절을 기념일로 지정한 것은 열강 사이에서 대한제국을 독립국으로 선포한 것을 기념하여 자긍심을 높이는 일이었다.

정의
1897년 9월 17일(양력 10월 12일), 조선 왕조 제26대 왕인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새로운 연호인 광무(光武)를 채택하여 대한제국 황제로 즉위한 날.
제정 목적

고종이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주1하고, 황제에 즉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즉위일인 9월 17일을 계천기원절(繼天紀元節)로 제정하였다.

내용

계천기원절의 지정은 1897년 12월 2일에 궁내부 대신 민영규(閔泳奎)가 고종의 황제 즉위일인 9월 17일(양력 10월 12일)을 기념하도록 계천기원절로 칭하자고 주2하여 이루어졌다. 대한제국기에는 계천기원절과 함께 태조고황제의 등극일인 음력 7월 16일을 주3, 고종의 탄신일을 만수성절, 황태자의 탄신일을 주5로 지정하여 기념하였다.

대한제국기에는 이러한 국가 기념일에 관청과 학교, 민가에 태극기를 게양하고 황제의 주4이 하사되어 축하연이나 축하회를 열었다. 가장 먼저 이루어진 것은 1895년에 궁중에서 개국기원절 행사를 벌인 것이었다. 첫 계천기원절 행사는 1898년에 벌였으며, 1900년에는 학교와 민간에서도 축하 행사를 벌였다.

의의 및 평가

계천기원절을 경축일로 기념한 것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고종이 황제에 오름으로써 당시 중국과 일본 등 열강 사이에서 동등한 지위를 확립하고 대외적으로 독립국임을 천명한 일을 기념한 것이다. 이는 자주국가로서의 자긍심을 높이고자 한 데에 그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원전

『고종실록(高宗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일성록(日省錄)』

단행본

이정희, 『대한제국 황실음악』(민속원, 2019)

신문 · 잡지

『만세보(萬歲報)』(1906.11.3)
『황성신문(皇城新聞)』(1900.11.9)
『황성신문(皇城新聞)』(1899.10.24)
주석
주1

이름이나 칭호 따위를 고침. 또는 그 이름이나 칭호. 주로 사람이 아닌 대상의 이름을 고칠 경우에 쓴다.    우리말샘

주2

임금에게 말씀을 아뢰던 일.    바로가기

주3

대한 제국 때에,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한 날을 기념하여 제정한 날. 음력 7월 16일이다.    우리말샘

주4

조선 시대에, 내탕고에 넣어 두고 임금이 개인적으로 쓰던 돈.    우리말샘

주5

온 국민이 기념하는 경사스러운 날.    우리말샘

집필자
목수현(서울대학교 규장각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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