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말부터 대한제국기에 전라남도 구례 일대에서 활약한 의병장 고광순(高光洵, 1848~1907)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이다.
의병장 고광순은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각 읍에 격문을 발송하고, 기우만(奇宇萬)과 의병을 모집하여 좌도의병대장에 추대되어 북진하던 중, 선유사(宣諭使)의 권고로 의병을 해산하였다. 1896년에는 명성왕후 시해와 단발령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는 상소를 올렸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다시 의병을 일으켰는데, 이때 '머지 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라는 뜻을 담은 '불원복'을 태극기에 새겨 의병활동의 정신적 지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고광순은 1907년 친척 및 윤영기(尹永淇) 등과 봉기하여 남원성을 공격하였고, 지리산을 거점으로 활약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의 연곡사 복멸작전에 의한 야습을 당하여 9월 부장 고제량(高濟亮)을 비롯한 장졸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불원복’ 태극기는 1986년 고광순의 후손 고영준이 독립기념관에 관리를 위탁하였다. '불원복'은 '머지 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라는 신념을 태극기에 새긴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한제국기에 항일 독립운동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사료 가치가 크다. 2008년 8월 12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