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대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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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근대사
제도
대한제국기인 1902년(광무 6) 9월에 대훈위 훈장으로, 금척대훈장 다음에 수여하도록 제정한 훈장.
제도/상훈
설치 시기
1902년(광무 6) 9월
폐지 시기
1910년(융희 4) 8월
시행 시기
대한제국기
주관 부서
표훈원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서성대훈장은 대한제국기인 1902년(광무 6) 9월에 대훈위 훈장으로, 금척대훈장 다음에 수여하도록 제정한 훈장이다. 금척대훈장과 이화대훈장 사이에 추가하여 황친이나 문무관 중에서 이미 이화대훈장을 받은 자가 특별한 공이 있을 때 수여하도록 제정하였다. 대훈위로 등급이 따로 없으며, 훈장의 형태는 홍색 바탕에 3개의 은색 별이 있고, 백색 광선과 이화문으로 주위를 둘렀다.

목차
정의
대한제국기인 1902년(광무 6) 9월에 대훈위 훈장으로, 금척대훈장 다음에 수여하도록 제정한 훈장.
제정 목적

대한제국기에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들에게 수여한 훈장으로, 대훈위 가운데 가장 등급이 높은 금척대훈장 다음으로 수여하였다. 황친이나 문무관 중 이화대훈장을 받은 자가 특별한 공이 있을 때 수여할 수 있도록 제정하였다.

내용

대한제국기에 대훈위의 하나로, 1902년(광무 6)에 추가되었다. 등급이 따로 없으며 정부(正副) 양장(兩章)이 있다. 정장(正章)은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비스듬하게 착용하는 넓은 띠인 대수(大綬)로 달며, 부장은 왼쪽 가슴에 단다. 형태는 중앙에 홍색 바탕에 3개의 은색 별이 있고 주위로 녹색 이화잎이 감싸고 있으며, 그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백색 광선을 이화문이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1907년(광무 11) 1월에 의양군(義陽君) 이재각(李載覺)에게 처음 수여하였으며, 10월에 완흥군(完興君) 이재면(李載冕), 완순군(完順君) 이재완(李載完) 등 주로 종친에게 수여하였다. 같은 해에 일본 특사 궁내 대신 다나카 미쓰아키[田中光顯],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일본 육군 대신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 등에게 수여하였다.

1908년(융희 2)에는 시종원민병석(閔丙奭)순정효황후의 부친인 해풍부원군 윤택영(尹澤榮)에게 수여하였다. 또한 1909년에는 통감부 자작 소네 아라스케[曾禰荒助] 등에게 수여하였다.

이화대훈장을 받은 자가 특지로 수여받는 훈장이었으나 주로 종친, 친일 관료, 일본 특사, 통감 등에게 수여하였으며, 수여한 수효가 많지 않았다. 1910년(융희 4) 8월에 폐지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종실록(高宗實錄)』
『구한국관보(舊韓國官報)』
『구한국훈장도(舊韓國勳章圖)』
『순종실록(純宗實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단행본

이강칠 『대한제국시대 훈장제도』(백산출판사, 1999)
집필자
목수현(서울대학교 규장각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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