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 태극기는 조선 말 고종의 외교고문으로 있었던 미국인 데니(O.N. Denny, 18381900)가 소장하고 있던 것이다. 데니는 1886년1890년 동안 통리군국사무아문(統理軍國事務衙門)의 협판(協辦)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의 장교당상(掌交堂上)의 직책을 맡아 고종의 정치 외교고문으로 활동하였다.
태극기의 제작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데니가 귀국할 때 가져간 것으로 알려져 있어 1890년 이전의 것으로 볼 수 있다. 태극기는 1883년에 제정 공표되었으며 이후 외교관계에서 조선과 대한제국의 독립성을 시각적으로 인식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데니도 이러한 점에서 태극기를 소지해 가져갔을 것으로 보인다.
데니 태극기는 크기가 세로 182.5㎝, 가로 262㎝로 현존하는 조선 말부터 대한제국기에 제작된 태극기 가운데 가장 크다. 형태는 광목 두 폭을 이어 박아 바탕을 만들고, 양방은 홍색, 음방과 4괘는 청색 천을 오려 바탕 천 위에 덧붙였다.
깃대선을 기준으로 가로 상단에 감괘와 건괘를, 하단에 곤괘와 이괘를 배치하였는데, 이 당시 괘의 배치는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깃대에 매다는 끈을 넣는 깃대선에는 단단하도록 머리카락을 넣어 제작하였다.
조선에서는 1889년(고종 25)에 미국 워싱턴에 공사관을 설치하고 내외부에 태극기를 설치하였는데, 특히 객당 복도에 대형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었음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데니 태극기도 이와 유사한 크기였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태극기는 대, 중, 소본으로 제작하였으며 대형 태극기는 관청이나 관선(官船) 등 공공 장소에 게양하도록 하였다. 따라서 데니 태극기도 공공 장소에서 사용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