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신여학교는 숙명여자고등학교의 전신으로서, 기독교계를 제외하고는 드물게 설립된 사립 여성 교육기관이다. 대한제국기에는 교육 입국의 이념으로 많은 학교가 설립되었고, 약 3,000여 개교가 설립된 것으로 파악되나 여성 교육기관은 매우 드문 편이었다.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는 1906년 엄준원이 일반인 여학생을 가르치는 진명여학교 설립을 후원하였고, 귀족 여학교의 필요성을 인식하여 1905년에 양정의숙을 설립한 엄주익으로 하여금 1906년 명신여학교를 설립하도록 하였다.
명신여학교는 1906년 5월 22일에 개교하였는데, 명신여학교 태극기와 현판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황실에서 제작하고 전달한 것으로 보이며, 완문은 명신여학교에 토지를 하사한 것을 기록한 문서이다.
태극기는 세로 105㎝, 가로 135㎝ 크기로 비단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상단에 오른쪽부터 가로쓰기로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라는 묵서를 쓰고 4괘와 태극문양은 틀을 사용하여 찍어서 제작하였다.
태극의 모양은 좌우로 양방이 홍색, 음방이 청색이나 위치가 좌우로 되어 있는데, 대한제국기 당시에는 태극의 모양이나 방향이 일정하지 않았다. ‘명신여학교’ 글자의 위치 때문에 태극은 중앙에서 아래로 내려와 있고 4괘는 네 귀퉁이에 치우쳐 있다.
현판은 1906년 명신여학교 개교 초기에 사용하던 것으로 크기는 세로 76㎝, 가로 200㎝로 나무 널판 2매를 붙여 제작하였다. 한자로 '명신여학교(明新女學校)'라는 글자를 돋을새김하였으며, 네 가장자리는 조선시대 궁중 현판의 일반적인 형식으로 액틀을 붙이고 채색으로 화초문(花草紋)과 운두문(雲頭紋)을 그렸다.
완문은 세로 29.5㎝, 가로 31.5㎝ 크기로 종이에 먹으로 기록한 문서이다. 앞쪽에 '명신여학교'라고 쓰고, 말미에 '영친왕궁'이라고 쓰여 있어 영친왕궁에서 발급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완문의 내용은 학교의 재정을 위하여 황해도 신천과 은율, 전라도 완도와 경기도 파주의 토지를 기증함을 기록하고 있다. 작성 시기를 “'광무 11년 정미 5월”로 적고 있어 완문이 1907년에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명신여학교는 초기에는 양반가 부녀자의 신교육을 통한 국력 배양에 중점을 둔 귀족학교로 출발하였으나, 이후 일반 부녀자들도 수용하여 여성 교육의 요람지로 발전하였다. 광복 후 1946년 수업연한 6년의 숙명여자중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51년 숙명여자중학교와 분리되어 숙명여자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순헌황귀비의 여성 교육에 대한 기여를 알 수 있는 유물로, 근대 여성교육사 및 민족운동사에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명신여학교 태극기 · 현판 · 완문은 2010년 8월 24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숙명여자고등학교 사료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