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서울특별시 은평구 소재의 진관사에서 칠성각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독립신문류 등 각종 문건 5종 19점이 발견되었다. 내부의 불단과 벽체 사이에 한지로 큰 봉지가 벽체에 부착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태극기를 보자기로 사용해서 싼 『독립신문』 등 신문 뭉치가 발견된 것이다. 1919년 3 · 1운동을 기점으로 진관사에서 활동하던 백초월 스님이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확보한 자료로 추정된다.
태극기와 함께 발견된 『독립신문』 등 신문류는 단재 신채호가 상하이[上海]에서 발간한 신문인 『신대한(新大韓)』 3점, 상하이 임시정부 기관지인 상하이판 『독립신문』 4점, 국내 천도교 측에서 발간한 지하신문인 『조선독립신문』 5점, 독립운동가들의 지하신문인 『자유신종보(自由晨鐘報)』 6점이 있고, 그와 함께 1919년 6월에 조선노동회경성단(朝鮮勞動會警醒團)에서 발간한 일종의 삐라인 경고문도 1점 있다.
이 신문들은 1919년 6월경부터 12월까지 분포하고 있고, 그 중에 『독립신문』 1점은 “대한민국 원년 12월 25일”로 기록해 상하이 임시정부가 결성된 이후의 날짜도 보여준다.
『독립신문』 제30호에는 「태극기」를 제목으로 한 시도 실려 있으며, 제32호에는 태극기의 의미와 제작법을 제시한 「태극국기신설(太極國旗新設)」이라는 글도 실려 있다. 이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및 불교계의 독립운동과 관련된 자료들이다. 이러한 자료는 진관사와 관련이 있던 백초월 스님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독립운동과 관련된 신문류는 1919년 3 · 1운동 이후 국내 독립운동 상황과 태극기의 의미와 제작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애초에 “진관사 소장 태극기 및 독립신문류”라는 명칭으로 2010년 2월 25일에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유산)로 지정되었는데, 2021년 10월 25일에 “서울 진관사 태극기”가 보물로 승격되어 지정됨으로써 국가등록문화재 명칭이 “진관사 소장 독립신문류”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