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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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산 고무나무 껍질에서 분비되는 액체를 응고시킨 생고무를 주원료로 하여 만든 물질.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고무는 열대산 고무나무 껍질에서 분비되는 액체를 응고시킨 생고무를 주원료로 하여 만든 물질이다. 상온상태에서 탄성이 강하고 신축이 자유롭다. 전기의 부도체로서 공업용이나 생활필수품의 원료로 쓰인다. 원료고무는 천연고무와 합성고무로 대별된다. 대표적인 고무제품은 자동차·자전거의 타이어 및 튜브와 신발류가 있다. 우리나라는 천연고무를 100% 수입하고 있다. 합성고무 사용량의 84%는 국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1997년 국내 고무제품 제조업체 수는 약 2,400개 사로 고무산업 생산액은 전체 제조업 생산액의 1.4%에 해당한다.

목차
정의
열대산 고무나무 껍질에서 분비되는 액체를 응고시킨 생고무를 주원료로 하여 만든 물질.
내용

상온상태(常溫狀態)에서 탄성(彈性)이 강하고 신축이 자유로우며 전기의 부도체로서 공업용이나 생활필수품의 원료로 많이 쓰인다.

고분자물질(高分子物質)로 된 탄성체이며, 20∼27℃에서 본래 길이의 2배로 1분간 잡아당긴 뒤 외력을 제거하면 1분 이내에 본래 길이의 1.5배 이하로 되돌아온다.

또 황(黃)이나 가교결합제(架橋結合劑)로 가황(加黃)이 되며 이때의 가황체는 18∼29℃에서 본래 길이의 3배로 잡아당겨도 끊어지지 않으며, 또한 본래 길이의 2배로 잡아당긴 뒤 외력을 제거하면 5분 이내에 본래 길이의 1.5배 이내로 되돌아온다.

원료고무는 천연고무와 합성고무로 대별되는데, 합성고무에는 분자구조와 특성이 각각 다른 약 20여 종이 있다. 고무제품으로는 자동차 · 자전거의 타이어 및 튜브를 비롯해서 신발류 · 벨트 · 호스 · 고무롤러 · 고무인포(引布) · 공업용고무부품 · 운동용구 · 의료용품 · 장난감 · 와이어 · 케이블 · 라텍스 제품 등이 있다.

인류가 최초로 고무를 사용한 연대는 명백하지 않으나, 이집트의 유적에서 간단한 고무인형 등이 발견된 것을 보면 그 역사는 퍽 오래된 것 같다.

그러나 고무의 발견은 콜럼버스(Columbus,C.)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 제2차 항해 때 아이티섬에서 원주민들이 가지고 놀던 덩어리로 된 고무공을 보고 이것을 문명사회로 가지고 돌아왔던 것이 최초라는 설이 유력하며, 그 연대는 1493∼1496년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에는 고무나무에서 얻은 것만으로는 결점이 너무 커서 사용이 불가능하였고, 다만 진귀품에 불과하였으므로 공업원료로는 쓰일 수가 없었다.

오늘날 고무를 Rubber라고 부르게 된 것은 1770년 영국의 화학자 조셉 프리스트리가 연필로 쓴 “문자를 지울 수 있다.(to rub out)”라는 사실을 알아낸 후 이 물질을 영어로 Rubber라고 부르게 된 데서 연유한다.

그 뒤 1839년 미국의 굿이어(Goodyear,C.)가 황을 혼합하여 장시간 가열함으로써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고무가황체를 만들 수 있게 되어, 비로소 공업기술면에서 과학적 ·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그 뒤 1870년 영국의 위캄경(Sir Wickham,H.)이 브라질에서 고무나무의 종자를 몰래 가져다가 런던의 왕립식물원(Kew Gardens)에서 재배하여 스리랑카 · 싱가포르 등지에 이식함으로써 재배천연고무가 동남아시아 지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1888년 영국의 던롭사(Dunlop社)가 공기 취입식 자동차타이어의 특허를 얻어냄으로써 고무제품의 공업생산이 본격화되었다.

합성고무는 19세기에 연구가 시작되어 제1차세계대전 때 독일에서 최초로 개발되었으며 제2차세계대전 중에는 미국에서 대량 생산을 시작하였다. 이는 두 차례에 걸친 세계전쟁중 동남아시아에서 생산된 천연고무를 수입할 수 없게 되자 개발이 촉진 · 가속화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고무제품이 들어온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881년 조선민영익 전권대사가 미국 출장에서 돌아올 때 연필용 지우개와 고무공을 선물로 받아 왔다고 하며, 1883년 우정국 시설이 가설될 때 전신용 고무부품이 들어왔을 것이다. 또한 경인선이 완성된 1899년 기차용 고무부품이 들어왔을 것이며, 고종의 전용 자동차(영국제)가 들어왔을 때 고무타이어가 끼워져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 고무제품이 보편화된 것은 1919년 서울 용산구 원효로 1가에 대륙고무공업사가 설립되어 고무신을 만들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1920년에 원산에 조선고무공업사, 1921년에 서울에 한성고무, 반도고무, 경기고무, 태창고무, 중앙상공, 부산에 선반고무, 평양에 시선고무, 동아고무 등이 설립되었다.

1937년에는 전국의 고무공장 수가 86개 사, 종업원수는 8,157명, 생산된 신발은 3118만 9471족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치하였던 탓으로 일본인의 고무제품 생산활동에 비하여 한국인의 활동은 매우 미약하였다. 더욱이, 제2차세계대전중에는 엄격한 통제경제하에서 원료의 궁핍 등 극심한 위축을 면하지 못하였다.

8 · 15광복을 계기로 고무공업도 점차 활기를 띠게 될 무렵 6 · 25전쟁으로 인해 다시 침체상태에 들어갔으나, 1960년도 하반기부터 신발류 및 자동차타이어 제품의 수출 호조에 힘입어 기술적 · 경제적인 면에서 장족의 발전을 가져왔다.

특히, 1973년도 및 1980년도에는 합성고무인 SBR(Styrene Butadiene Rubber:합성고무의 일종) 및 BR(Butadiene Rubber)를, 1983년에 NBR(Nitrile Butadiene Rubber), 1987년에 EPR(EPDM, Ethylene Propylene Rubber)를 각각 생산개시하여, 합성고무 생산국이 되었다.

한 나라의 고무산업을 평가할 때는 원료고부소비량을 기준하게 된다. IRSG(International Rubber Study Group)자료에 의하여 1997년 우리나라의 천연고무(NR) 사용량 약 32만t(4억 달러)과 합성고무(SR) 사용량 37만t을 합하면 약 69만t으로서 세계 5위의 고무 소비국가가 되었다. 이는 1990년의 고무 사용량 57만t(NR 27만t+SR 30만t)에 비하여 1990년대는 연평균 약 2.7% 증가한 것이다. 그러나 1998년에는 54만 7000t으로 줄어들었다.

우리나라는 천연고무를 100% 수입하고 있다. 1980년대까지는 주로 말레이시아산을 수입하였으나, 수입국가가 점차 다변화되어 1997년에는 태국산 38%, 인도네시아산 30%, 말레이시아산 30%로 수입되고 있다.

합성고무 사용량의 84%는 국산으로 충당하고 있다. 1997년의 수출량은 26만 7000t, 수입량은 10만 5000t이다.

통계청의 광공업통계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1997년 국내 고무제품 제조업체 수는 약 2,400개 사로 이들 고무산업 생산액은 약 66억 달러로서 전체 제조업생산액(4,572억 달러)의 1.4%에 해당된다.

1990년의 비중값 3.6%에 비하면 현저한 감소를 보이고 있다. 이는 신발산업의 쇠퇴로 전체 고무산업의 성장이 0.5%로 둔화된 데 비해 자동차 · 조선 · 전자 · 기타 중화학공업의 성장률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이다.

고무제품/국가의 수출비중은 1990년의 8.2%, 1995년의 2.5%, 1996년의 2.4%, 1997년의 2.1%(29억 달러/1,362억 달러)이다.

우리나라 고무공업에 있어서의 주요 기업은 고무탄성체(원료고무) · 자동차타이어 · 튜브 · 신발류 · 공업용품 및 공업용 고무부품, 고무제품용 부자재 등으로 대별된다. 고무탄성체의 경우 한국합성고무공업(주)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1973년부터 경상남도 울산공장에서 SBR의 생산을 개시하였으며, 생산능력은 연간 13만t이었다.

그 후 1980년에 2만t, 1992년에 5만t을 증설하여 합계 20만t의 연간 생산능력을 가진 현재의 금호석유화학(주)와 1996년 현대석유화학(주)의 4만 5000t 규모를 합하면 연간 24만 5000t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다.

SBR 라텍스는 1983년에 4만t의 금호석유화학(주), 1994년에 1만 5000t의 LG, 1996년에 4만t의 한솔, 1994년에 2만t의 울산패시곡을 합하면 연간 11만 5000t의 생산능력을 가지고 있다. HSR(High Styrene Rubber)의 경우 1982∼1983년에 5,000t의 생산능력을 가진 금호석유화학(주)가 있다.

NBR(Nitrile Butadiene Rubber)은 1983년에 5,000t, 1991년에 5,000t을 증설한 금호석유화학(주)의 10만t 규모와 1996년 현대석유화학(주)의 17만t을 합하면 연간 27만t 규모의 생산시설이다.

EPR(EPDM, Etylene Propylene Rubber)은 1987년에 1만 3000t으로 시작하여 1989년에 7,000t, 1997년에 2만t을 증설하여 총 4만t의 생산능력을 가진 금호폴리켐(주)가 있다.

우리나라가 일부 합성고무를 생산한 후 1997년 총 생산량은 53만 1000t으로 1990년대 들어서 연평균 13%씩 증가하였다. 총 생산량 중 SBR이 47.3%, BR이 28.4%이다. 수입량도 10만 5000t이나 국내 수요 둔화 및 생산증가로 수입은 감소추세이다. 수출량은 26만 7000t으로서 해외진출한 우리나라 신발 및 타이어업체에의 공급물량이 늘어나 연평균 23% 신장하였다.

국내 사용량은 타이어 부문의 수입증가와 신발사업의 위축으로 그 증가율은 연평균 3.1%에 그치고 있다. 총 공급량 63만 6000t 중 수입량이 16.5%를 차지하는 것은 국내 생산이 불가능하거나 국내생산이 되더라도 공급선을 다원화하려는 대량이용업체의 구매정책 때문이다.

타이어 및 튜브산업은 자동차용 타이어 생산업체 3개 사와 튜브전문 생산업체 4개 사, 이륜차용 타이어 · 튜브 생산업체 3개 사와 그 외 다수의 재생타이어 제조업체가 있다. 대표적인 회사는 자동차용 타이어 및 튜브는 한국타이어(주), 금호산산(주), 우성타이어(주)이며 튜브전문 생산업체로는 동아타이어공업(주), 흥아타이어공업(주), (주)삼원, 대한타이어공업(주)이고, 이륜차용 타이어 · 튜브 제조업체는 (주)흥아, (주)신흥 등이 있으며 대한타이어공업협회의 회원사이다.

타이어산업이 전체 고무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에 19.2%로, 1996년에는 37.4%로 높아지고 있으며, 고무사용 비중은 타이어의 특성상 훨씬 높다. 1997년에 약 5900만 개의 타이어 생산(생산중량으로는 78만 2000t)으로 1990년대 연평균 10.2%로 성장하였다.

또 타이어의 구조상으로 보면 바이어스 타이어에서 레디얼 타이어로 급속하게 진전하여 1997년에는 전체 생산량의 약 91%가 되었는데, 승용차용은 1980년대에 이미 95%를 넘었고 경트럭용도 1997년에 76.6%, 트럭 · 버스용도 1990년의 33.7%가 1997년에는 61.0%로 급격한 변화를 보였다.

이륜차용 타이어 · 튜브생산량은 1997년 타이어 1,010만 개, 튜브 960만 개로 1990년대에 들어서서 연평균 각각 13.4%, 15.4%로 감소되어 최고조에 달했던 1980년대 중반에 비하면 약 1/3으로 감소되었다.

이는 세계 최대 메이커인 한 업체가 자전거 및 손수레용 타이어 생산설비를 인도네시아로 이전하였기 때문이다. 이륜차용 타이어 · 튜브는 1997년 현재 생산량의 약 40%가 내수용으로 사용되고 약 60%는 수출하고 있다.

한편 자동차보유 증가로 폐타이어의 다량 발생이 사회환경문제로 대두되고 있으며 재생타이어의 재가공, 재생고무 또는 분말제조용, 원형으로의 이용, 시멘트킬른에의 열(熱)이용으로 처리되고 있다.

신발류 제조업체들은 그들 중 약 50개 업체가 한국신발수출조합의 회원사들이며, 이들이 내수용 및 수출용 신발류 생산의 약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체로는 국제상사(주) · 태화(주) · 삼화(주) · 동양고무산업(주) · 진양화학공업(주) · 풍영(주) · 삼양통상(주) 등이 있다. 신발산업은 수출을 발판으로 성장하면서 1990년 수출 43억 달러를 정점으로 생산 및 수출이 감소하는 경향이다.

1988년 5억 7000만 족의 생산실적이 1997년에는 1억 7000만 족으로 줄어들었고, 또 아시아 신흥 신발생산국과의 수출경쟁력이 상실되면서 저가품 생산라인을 개도국으로 이전하는 한편, 기술집약적이고 고급품 수출에 주력하는 동안 국내시장의 저가품 수요 대부분이 수입품으로 대체되고 그 점유율이 20%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이다.

공업용품 제조사로는 고무벨트를 생산하는 부산의 동일고무벨트(주)와 안동의 한국벨트공업(주)가 대표적이며, 국내수요의 충족은 물론 다량 수출하고 있다. 호스제조는 대표적으로 부산의 동양화공(주)를 들 수가 있고, 고무롤러는 성남의 광성산업(주)가 오랜 전통과 기술을 자랑하고 있다. 고무인포와 그 제품은 삼공물산(주)가 오랜 전통을 가지고 대량생산하고 있다.

공업용 고무부품은 주로 자동차용 부품제조를 말하며, 대표적인 기업체로는 대구의 평화산업(주) · 건화(주), 김포의 경도특수고무 등이 있는데, 극히 소수의 품목을 제외하고는 국내 자동차생산업계의 전체 수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평화산업(주)는 1983년부터 약 500만 달러 상당의 고무부품을 미국 자동차생산업계에 수출하고 있다.

고무제품용 부자재로는 주로 카본블랙 · 화이트카본 · 촉진제 또는 노화방지제 등의 배합약품 · 산화아연 등을 들 수가 있다. 카본블랙은 럭키콘티넨탈카본(주)가 1969년 10월부터 경기도 부평에 연산 6만t 규모의 시설과 전라남도 여천공장에 연산 17만t 능력의 공장을 가지고 있으며, 코리아카본블랙(주)로 개명하였다.

제철화학(주)는 미국의 애쉬랜드사의 기술을 도입, 1981년 7월 연산 3만t 규모의 공장을 완공하고 생산을 개시하였으며, 현재 10만t 규모이며 거평(주)를 합하면 총53만t 규모이다.

화이트카본은 1976년 7월 인천의 한불화학(주)가 프랑스와의 기술합작으로 제조시설의 완공을 보게 되어 연산 4만 5000t의 규모로 생산을 개시하였다. 1999년에 로디아코프랑(주)로 개명하였다.

고무배합약품 중 가황촉진제 및 노화방지제는 금호화학(주)가 1976년 12월 전라남도 여천석유화학 제2단지에 연산 5,000t 규모의 공장을 설립하였다. 또한, 1970년대 하반기에 인천의 동양화학공업(주)가 유기가황촉진제의 일부를 생산개시하였고 삼원화학(주), 용진화학(주)에서도 생산된다.

아연화(산화아연)의 생산은 인천의 한일화학공업(주)가 연산 6,000t 규모로 양질의 제품을 내고 있으며, 경기도 반월공단의 국제화성(주)가 연산 5,000t 규모의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부산지구에서는 삼영화학(주)가 습식아연화(탄산아연)를 주로 생산하고 있다. 이 밖에 태화칼슘(주)가 탄산칼슘 계열의 무기충전제를 만들고 있으며, 부산의 미창석유공업(주)와 천미광유공업(주)에서 고무배합유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부산의 동성화학공업(주)가 고무제품용 도료 및 접착제를 만들고 있다. 1983년부터 CMB(Carbon Master Batch)와 배합고무(Rubber Compound)를 제조하여 제품생산업체에 공급하는 사업이 생겨났으며 금호석유화학(주), 한국CMB, (주)유승무역(구 화인소재), 순흥화학공업(주), 대구CMB, 덕수화학(주) 등의 전문업체에서 제조하고 있다.

신발류 수출은 1962년에 총수출액이 21만 달러였던 것이 1971년에는 3073만 달러로 증가하였으며, 또한 1984년에는 14억 달러로 신장함으로써 지난 13년간 무려 47배 증가하였다.

그리고 1984년 국가별 신발류 수출을 보면 총 14억 달러 중 대미수출액이 67.5%인 9억 3400만 달러로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다음이 일본으로서 9%를 차지하며, 그 다음이 캐나다 · 영국 · 이탈리아 · 프랑스 등의 차례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수출증가 추세는 1990년 수출액 43억 달러를 정점으로 감소추세이다.

다음은 타이어 및 튜브인데, 이들 산업은 생산설비에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자본집약적 산업일 뿐만 아니라, 안정성과 경제성이 동시에 요구되고 제품성격상 높은 기술수준이 필요한 산업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타이어산업은 1950년대까지는 재생타이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신생타이어를 생산하기 시작하였고,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정부의 자동차공업 육성정책 및 고속도로 건설확장에 따라, 국내수요는 물론 해외수출도 급속히 증가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에 따라 타이어 및 튜브의 총생산량은 1967년에 각각 48만 본 및 24만 본이었던 것이 1980년에는 1170만 본 및 838만 본으로 지난 13년간 24배 및 35배가 각각 신장되었다.

해외수출은 1962년에 처음으로 태국 · 파키스탄 등에, 1969년 이후에는 동남아시아 지역에 편중되었던 수출시장을 중동 및 미주 지역으로도 확대함으로써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1971년에 총수출액이 404만 달러였던 것이 1975년에는 8207만 달러로 지난 4년간 20배가 신장되었으며, 1984년에는 4억 7000만 달러를 기록함으로써 전년도에 비하여 무려 30%가 증가하였다.

1984년 말 국가별 수출액을 보면, 미국에 대한 수출액이 전체의 45%인 2억 달러로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으며, 그 다음이 사우디아라비아이다.

1997년 수출시장 구조는 유럽지역 26.4%, 북미지역 18.7%, 중남미 18.3%, 중동지역 15.3%, 동남아시아 10.0%, 기타 지역이 11.3%의 비율이다.

타이어 · 튜브와 신발을 제외한 기타 고무제품 산업은 1997년에 제조업체 수가 781개 사, 생산액은 1조 6000억 원으로 1990년대 연평균 13.5%로 성장하였고 자동차 생산대수의 증가로 자동차용 부품수요가 증가하여 수입이 수출을 상회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굴지의 신발생산시설을 갖추고 세계 제1의 수출국으로 부상함에 따라, 총수출액에 대한 신발류 수출비중이 거의 5%(1984년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1990년의 수출 43억 달러를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다.

앞으로의 수출 신장에는 많은 타격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중국이 앞으로 우리의 강력한 수출경쟁국이 될 것이므로 우리의 해외시장 기반도 약화될 우려가 있다. 지속적인 신발류 수출증대를 위하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고급원재료의 개발을 통한 수출상품의 고급화와 함께 소비자의 기호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다양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우리나라 신발류는 대부분 자체상표 없이 주문생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자체상표 개발 및 연구개발을 위한 투자가 더욱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우리나라의 신발류 수출은 지나치게 미국에 편중되어 있으므로 시장다변화에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나 타이어제품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더욱 선진화되어 감에 따라 자동차 수도 증가될 것이므로, 타이어제품 및 자동차부품의 수요는 계속 증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현재 선진국에서는 TPR(열가소성고무)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므로 이 TPR의 용도를 더욱 개척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기능성 고무제품의 개발을 위한 연구에 박차를 가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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