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찬(崔纘: 1554년~1624)은 조선 후기 학자로, 본관은 수성(隋城)이며, 자는 백승(伯承), 호는 고송(孤松)이다. 아버지는 예조좌랑 최희열(崔希說)이다.
『고송유고(孤松遺稿)』는 1책의 활자본으로, 책의 앞뒤로 1863년(철종 14)에 작성한 장헌주(張憲周) · 최형(崔衡)의 서문, 최인국(崔麟國) · 최기문(崔基文) · 최기중(崔基重)의 발문이 수록되어 있다. 표제는 ‘고송집(孤松集)’, 권수제는 ‘고송최공유고(孤松崔公遺稿)’이다. 국립중앙도서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전남대학교 등에 소장되어 있다.
최찬의 8세손인 최기문 등의 주도로 1863년에 간행되었다. 본래 최찬의 시문은 상당히 많았으나, 1614년(광해군 6) 영창대군이 죽임을 당하자 그를 애도하여 「애대군가(哀大君歌)」를 지었고, 이로 인해 6년간 옥고를 치르며 많은 시문이 유실되었다. 이후 그의 문집은 한미한 가문을 따라 전해지며 보존이 소홀했고, 산일된 자료가 많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현손 최형, 7세손 최흥한(崔興翰) 등이 편찬을 이어받았고, 최기문 등이 이를 정리해 간행한 것이다.
시는 「유중흥사구호(遊重興寺口呼)」를 비롯하여 28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이 중 「애대군가」[이칭 「운전가(耘田歌)」]가 포함되어 있다. 최찬을 대상으로 한 부록으로는, 김시서(金市西) · 홍반환(洪盤桓) 등의 만시, 김시서의 제문, 최형(崔衡)의 가장(家狀), 유정신(柳廷藎) · 최석한(崔碩翰)의 행장, 기정진(奇正鎭)의 묘표 등이 있다.
「애대군가」는 이이첨(李爾瞻) · 정인홍(鄭仁弘) 등의 모함으로 강화도에 유배되었다가 끝내 죽임을 당한 영창대군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노래한 것이다. 또한 「옥중자경음(獄中自警吟)」 3수는 「애대군가」를 지은 것이 문제가 되어 옥중에 수감되어 있을 당시,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도 찾아뵙지 못하는 상황에서 효심을 노래한 시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최형이 작성한 가장(家狀) 뒷부분에 「애대군가」를 언문으로 번역해 수록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고송유고』는 최찬의 강직한 성품과 고결한 삶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최찬은 나주 초동마을의 학문적 전통과 집안의 학풍, 부친 최희열의 정치적 신념 등에서 영향을 받아 강직한 성품과 신념을 지녔다. 그리고 이러한 성품과 신념을 바탕으로 절조의 삶을 실천한 인물인데, 「애대군가」와 같은 작품이 그 단적인 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