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초의(赤綃衣)는 백관의 예복인 조복(朝服) 일습에 포함된 옷이다. 조복은 경축일, 정월 초하루, 동지, 조칙을 반포할 때 입으며 금관조복(金冠朝服)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조복은 태종 16년 관복색을 설치하여 제도를 만든 다음 세종 때 여러 차례의 논의를 거친 후 완성된 제도가 『경국대전』에 정리되었다. 조복은 적초의를 겉에 입고, 안에는 중단(中單), 아래에는 상(裳)을 입는다. 적초의 위에는 대대(大帶)와 혁대(革代)를 띠고, 폐슬(蔽膝)과 후수(後綬), 패옥(佩玉)을 단다. 머리에는 금칠을 한 양관(梁冠)을 쓰며, 발에는 말(襪)과 혜(鞋)를 신고, 홀(笏)을 손에 들어 조복의 모습이 완성된다. 적초의는 적색의 초로 만들었기 때문에 붙은 명칭이다. 하지만 조선후기의 유물을 보면 순인(純鱗)이나 항라로 만든 것이 많다. 폐슬도 처음에는 대(帶)에 걸도록 만들었으나 조선조 말의 유물은 폐슬을 적초의의 왼쪽 가슴에 매듭단추로 달거나 꿰매어 달았다.
이 유물은 고종사제복이란 명칭으로 1979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나, 국왕의 복식이 아니므로 2005년에 적초의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소재를 보면, 겉은 홍색 순인, 안은 세주(細紬)로 만들었다. 깃은 목판 당코형의 직령교임이며 넓은 두리 소매가 달려 있다. 좌우 옆선은 진동 밑에서부터 트였다. 깃 도련 수구에는 흑색 순인으로 선을 둘렀는데 길과 흑색 선 사이에는 0.2㎝ 가량의 가는 흰 선을 끼워 넣었다. 손으로 상침을 하였던 이전의 다른 유물과 달리 흑색 선위에는 재봉틀로 상침하였다. 가로 25㎝, 세로 35㎝의 홍색 폐슬이 적초의의 왼쪽 가슴부분에 직접 꿰매어 달려 있다.
조선조 말의 조복의 양식을 잘 나타내는 제작과 보존 상태가 우수한 유물이지만, 재봉틀로 바느질된 것이나 고름의 크기, 폐슬의 부착 방법 등으로 보아 연대가 내려가는 유물이다. 1979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청초중단과 함께 조선말기 조복의 일습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