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 ()

목차
관련 정보
정치
문헌
33653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발효시킨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등으로 구성된 선언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은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발효시킨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 등으로 구성된 선언서이다. 남북기본합의서는 1991년 12월 채택·서명되고(제5차), 1992년 2월 제6차 회담에서 확인·발효된 정부 간 공식 합의 문서이다. 주요 내용은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협력 등이며, 분단 상태 종식 및 평화 통일을 향한 실질적 이정표로 평가되었다. 한편 제5차 회담 후 남북한은 비핵화공동선언을 채택하였고, 이를 1992년 2월 19일 6차 회담에서 이를 발효시켰다. 그러나 북한은 1993년 핵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하였다.

목차
정의
33653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을 통해 발효시킨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등으로 구성된 선언서.
내용

「남북기본합의서」는 1991년 12월 13일 서울에서 개최된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채택 · 서명되고, 1992년 2월 19일 평양에서 열린 제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확인 · 발효된 남북한의 기본관계에 관한 정부간 공식 합의 문서이다. 서문과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 협력, 수정 및 발효 등 4개장 25개 조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1972년에 채택 된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류 · 협력을 실현하여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한다.”고 선언하고,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 · 협력에 관하여 향후 남북한이 실천해야 할 사항을 법적 권리 · 의무의 형태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 합의서는 내용상 통일 이전의 남북관계를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통일에 이르는 과도적 기간중 남북간의 기본관계를 규정한 잠정협정의 성격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제하에 남북한은 1992년 3월 18일 이전에 정치, 군사, 교류 · 협력 등 3개 분과위원회를 각기 구성, 남북간의 평화체제 정착과 군축 및 교류 · 협력 방안 등을 협의하도록 하였고, 5월 18일 이전에 판문점에는 상호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며 남북군사공동위원회 및 경제교류 · 협력위원회를 비롯한 부문별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남북한은 1992년 9월 16일부터 평양에서 개최된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이 합의서의 부속합의서인 「남북화해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남북불가침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 「남북교류 · 협력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를 채택 · 발효시키는 한편으로, 이의 실천을 위해 남북화해공동위원회, 남북군사공동위원회, 남북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와 남북사회문화교류·협력공동위원회가 함께 노력할 것을 재확인하였다.

그러므로 이 합의서는 7·4남북공동성명에 비하여 형식 · 내용 · 발효절차 등 모든 면에서 격식을 갖춘 공식문서로서, 남북 분단 상태를 종식하고 평화적 통일로 가기 위한 실질적 이정표로서 평가될 수 있다. 이 문서는 남북관계에 관한 여러 가지 기본원칙을 천명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이행을 위한 부속합의서와 담당기구 및 구체적인 이행방법까지 마련하도록 하는 실천적 지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합의된 바에 따라 3차례에 걸친 대표접촉이 1991년 12월 26일부터 31일까지 판문점에서 열렸다. 여기서 북한은 그동안 주장해 오던 비핵지대화 주장을 접고 우리측의 비핵화 선언에 응하게 되었으며, 1991년 12월 31일에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채택하게 되었다. 합의된 내용을 이듬해 1992년 1월 20일 남한의 정원식 총리와 북한의 연형묵 총리가 서명하고 남북고위급회담 6차 회담에서 2월 19일자로 발효시켰다.

이렇게 발효된 비핵화공동선언은 전문과 6개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핵무기의 시험 제조 갱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配備) 사용을 하지 아니하며, ②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에만 이용하고, ③ 핵처리시설과 우라늄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아니하고, ④ 한반도의 비핵화를 검증하기 위하여 상대측이 선정하고 쌍방이 합의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남북핵통제위원회가 규정하는 절차와 방법으로 사찰을 실시하며, ⑤ 이 선언의 이행을 위하여 공동선언이 발효된 후 1개월 안에 남북핵통제위원회를 구성하며, ⑥ 이 공동선언은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등의 6개 조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별도로 남북기본합의서의 제1장 남북화해를 위한 부속합의서 제18조에서도 이를 성실히 이행, 준수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규정하였다. 이렇게 채택된 비핵화 공동선언은 6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기본합의서와 함께 효력을 발생하게 되었다. 그러나 비핵화 공동선언에도 불구하고 핵문제는 곧 걷잡을 수 없는 수렁을 빠져들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임시 핵 사찰을 실시한 결과로 영변의 2개 의혹 시설에 대한 추가 사찰을 요구하였으나 북한이 이를 거부하고 1993년 3월 핵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1차 핵위기가 발생하면서 남북기본합의서와 3개 부속합의서는 실천에 옮겨지지 못했다.

이후 북한은 2006년 10월에 1차 핵실험, 2009년 5월에 2차 핵실험, 그리고 2013년 2월에 3차 핵실험을 감행함으로써 남북이 합의했던 비핵화 공동선언을 대대적으로 무력화시켰다. 비핵화 공동선언은 북한이 이를 파기함으로써 선언에 그치고 있지만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에게 그 이행과 준수를 요구할 수 있는 명백한 준거가 되고 있으며, 유엔 등 국제사회의 대북 규탄 및 제재 결의 시에도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참고문헌

『남북관계 지식사전』(통일부 통일교육원, 2011)
『남북기본합의서해설』(통일원, 1992)
「남북합의서 진단」(강광식 외,『북한』242, 북한연구소, 1992)
「남북합의서의 법적성격과 정치적 의의」(정세현,『통일문제연구』4-1, 통일원, 1992)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