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8월 「농업협동조합법」에 의거하여 발족하였다. 협동조합의 일종인 농업협동조합은 농업경영자인 농민들의 일정한 경제활동을 공동으로 영위하여 농업경영을 발전시키고 농민들의 지위향상을 도모하는 경제단체로서, 현재 우리나라의 협동조합 가운데 가장 큰 조직기반과 사업규모를 가지고 있다.
농업협동조합(약칭 농협)은 전문농협(專門農協)과 종합농협(綜合農協)의 두 형태로 구분할 수 있는데, 구미선진제국의 경우 농민 스스로 조직한 전문농협이 대부분으로 그 목적과 기능이 극히 제한된 데 비하여,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는 정부에 의하여 설립, 육성되고 신용사업을 비롯한 각종사업을 겸영하는 다목적 종합농협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민족고유의 계(契)나 향약(鄕約)과 같은 협동조직이 있었다. 계는 신라 유리왕 때의 가배계(嘉俳契)에서 비롯되어 조선 초기에는 목계(目契) · 학계(學契) · 혼상계(婚喪契) · 종계(宗契) · 농계(農契) · 식리계(殖利契) · 친목사교계(親睦社交契)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하였으며, 오늘날에서도 서민생활에서 상부상조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
향약은 송나라에서 시작되어 조선시대 중종 때 도입된 것으로, 유교적인 향풍교화(鄕風敎化)와 함께 사창(社倉)의 구성을 통한 민생구황(民生救荒)을 도모하는 조직이었다. 전통사회에서의 이러한 조직은 상부상조의 인적 조직이기는 하였으나, 자본주의경제하에서 경제적 약자의 단체인 근대적 협동조합과는 그 성격이 구별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 근대적 협동조합의 시초는 한말인 1907년 5월에 공포된 「지방금융조합규칙」에 의거, 광주에 처음 설립된 지방금융조합이라 할 수 있다. 지방금융조합은 그 뒤 몇 차례의 법령개정으로 명칭이 ‘금융조합’으로 바뀌면서 점차 전국적인 연합조직으로 발전하여, 광복 이후 ‘농업은행’이 설립될 때까지 농업금융을 거의 전담하였다.
그 밖에도 일제하에 조직된 관제조합으로는 산업조합 및 조선농회 등이 있었으나 광복 이전에 거의 소멸되었다. 또 자생적 민간협동조합운동으로는 일본유학생 중심의 소비조합운동과 천도교계의 조선농민사운동 및 기독계의 농촌협동조합운동이 있었으나, 일제의 탄압에 의하여 해산 또는 소멸되고 말았다.
광복과 더불어 각종 농업단체에서는 농협 설립을 위한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1957년 2월에는 「농업협동조합법」 및 「농업은행법」이 제정, 공포되었고, 1958년에는 마침내 농업금융을 전담하는 특수은행인 농업은행과 경제사업을 담당하는 농업협동조합이 각각 발족됨으로써 농촌조직은 이원적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농협은 외형적으로 전국적 조직체계는 갖추었으나 경영기술의 미숙, 신용사업의 배제와 분리에 따른 자금력 부족, 사업기반의 취약 등으로 운영난을 겪게 되었다.
또한 농업은행도 농협과의 유기적 협조에 의한 효율적 운영을 기하지 못한 나머지 농촌에 대한 적절하고도 효율적인 지원의 기능을 다하지 못해, 농촌에 고리채(高利債)가 만연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원화된 이들 농촌조직의 조직상 및 운영면의 비합리성과 비효율성은 1950년대 농촌사회의 통폐로 지적되었다. 그러던 중 1961년의 5·16군사정부는 농협을 재편성하여 농촌경제의 향상을 도모한다는 방침 아래 그해 7월 새로운 「농업협동조합법」을 제정, 공포하였다.
이에 따라 새로운 농업협동조합은 농업은행과 구 농협의 업무를 인수하고, 1961년 8월 중앙회를 비롯하여 8개 도지부, 140개 시군조합, 101개 특수조합, 2만1042개 이동조합(里洞組合) 등의 3단계 계통조직체제를 마침내 갖추고 발족을 보게 되었다.
발족 이래 농협은 조합업적경진대회, 새농민운동 등을 통하여 이동조합의 경영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조합경영기반 강화를 위하여 합병을 적극 추진하였다.
특히, 1969년부터는 적정 경영규모 확보를 위하여 이동조합의 읍면단위조합으로의 합병을 강력히 추진한 결과 이동조합의 수는 1969년의 7,525개에서 1972년에는 1,567개로 줄어들었고, 이에 따라 1973년부터는 이동조합 및 읍면조합이라는 명칭을 ‘단위조합(單位組合)’으로 바꾸게 되었다.
이와 같은 합병추진과 함께 1969년부터 시작한 상호금융을 비롯하여 1970년의 연쇄점사업, 그리고 1970년부터 군조합에서 취급하여오던 비료 · 농사자금 · 정책판매 · 공제 등 4대 업무를 단위조합에서 취급하게 되었다. 따라서 단위조합이 직접 모든 대농민업무를 담당하여 농협의 근간조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단위조합의 조직기반이 확충됨에 따라 모든 단위조합을 자립화할 것을 목표로 1974년부터 경영자립계획을 수립, 농민을 위하여 종합농협으로서의 기능을 자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경영능력을 갖추도록 하였다. 또한 1977년부터는 새마을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각종 소득사업을 한데 묶어 새마을소득종합개발사업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이 사업은 단위조합 주관하에 마을단위의 협동생산기능과 읍면단위의 생산유통지원기능을 종합적으로 투입하여, 최대의 개발효과를 도모하는 읍면단위지역 농업종합개발사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편, 1980년 말의 법개정으로, 1981년 초에는 시군조합이 중앙회의 지사무소로 흡수됨에 따라 농협계통조직은 회원조합과 중앙회의 2단계로 개편되었으며, 축산지원 업무를 새로 설립된 축협중앙회에 이관하였다.
중앙회는 농협조직의 최상위 기관이며 비영리적인 연합조직체로서 전계통조합을 대표하고 그들을 지도 · 조정하며, 그 신용사업 및 생산 · 판매 · 구매 · 이용 등 각종 사업을 지원한다. 그 밖에 경영지도 · 조사 · 연구 · 감사 · 농정활동 등의 고유기능을 통하여 전농협의 건전한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농협은 1987년의 6·29선언 이후 정치 · 경제 · 사회전반의 민주화와 더불어 민주화의 전기를 맞이하였다.
즉, 1988년 말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으로 조합장과 중앙회장이 종전 임명제에서 각각 조합원과 조합장이 직접 선출하는 선출제로 전환됨으로써 민주농협의 기틀이 다져졌다. 이에 따라 1990년 4월 회원조합장의 직접투표로 초대 직선 중앙회장이 선출됨으로써 제1기 민주농협이 출범하였다. 이어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 타결 등 어려운 농업 · 농촌 여건 속에서 1994년 3월 출범한 제2기 민주농협은 운영방침을 농민본위 · 항재농장 · 실사구시로 정하고 임직원 의식개혁운동으로 ‘하나로 거듭나기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매년 ‘농업인식익 100대 사업’을 선정 · 추진함으로써 각종 사업을 농업인실익 중심으로 개혁해왔다. 1998년 3월 출범한 제3기 민주농협은 제2기 민주농협의 운영성과를 바탕으로 농업인실익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국민 모두에게 사랑받는 국민의 농협으로 성장하고, 세계 속의 으뜸농협으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8년 기준 조합원수는 223만 854명이다. 회원조합은 1,127개로 지역농협 932개, 지역축협 116개, 품목농협 45, 품목축협 23, 인삼협 11개다. 또한, 2013년 기준으로 농협중앙회는 중앙본부와 16개 지역본부, 5개의 사내분사 본사, 16개의 공판장, 9개의 유통센터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농협중앙회 지사무소로 190개의 시 · 군지부가 있다.
2024년 8월 1일 기준으로 조합원수는 208만 명이다. 회원조합은 1,111개로 지역농협 916개, 지역축협 116개, 품목농협 45개, 품목축협 23개, 인삼협 11개다. 또한, 2024년 7월 31일 기준으로 농협중앙회는 중앙본부와 16개 지역본부, 16개의 지역검사국, 158개의 시 · 군지부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농협의 기본구성요소인 조합원은 조합의 구역안에 주소나 거소 또는 농업경영사업장이 있는 농민으로 한하며, 농협에 출자하고 농협경영에 참여한다. 이들은 농협을 통하여 경제적 이익을 얻는 출자자인 동시에 경영자이며 이용자이므로 일반기업체의 주주와는 지위가 다르다. 농협의 경영관리기관으로는 의사를 결정하는 총회와 업무를 집행하는 조합장 및 이사회 그리고 업무집행상황을 감독하는 감사가 있다.
총회는 조합원으로써 구성되며 조합의 최고의사를 결정한다. 그러나 조합원이 200명(중앙회는 회원 500명)을 초과할 경우에는 회의진행의 능률화를 기하기 위하여 총회에 갈음할 대의원회를 운영토록 하고 있다. 대의원회의 구성원인 대의원은 조합원 중에서 선출하되, 그 정수는 50∼200명(중앙회 100∼200명) 이내에서 정해진다.
(1) 신용사업
농협은 농촌지역은 물론 도시의 유휴자금을 동원하여 이것을 농촌에 생산자금으로 공급하고 있다. 신용사업은 건실하게 성장하고 있으며, 1998년 9월 현재 중앙회 예수금과 회원조합 상호금융을 합해 100조 원에 육박하는 국내 최대 슈퍼은행으로 발전하고 있다.
농협의 신용사업은 지도사업과 경제사업을 지원함으로써 지도 · 경제사업이 발전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회원조합의 상호금융은 농가의 고리사채를 없애고 농촌의 사채금리를 낮추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농촌지역의 제도금융을 정착시키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2) 경제사업
농협은 구매사업을 통해 농가가 필요로 하는 생활물자와 영농자재를 염가 공급하고 있다. 또한 산지로부터 소비지에 이르기까지 각종 유통시설을 확보하고 농산물의 공동출하를 촉진하는 판매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농협의 공동판매는 꾸준한 성장을 거듭해 1997년의 경우에는 8조6천억 원에 이르렀으며, 이는 1997년 농업생산액의 약 30%에 해당하는 규모다.
1990년대에 들어 미곡종합처리장(RPC)을 대폭 설치하여 산물수집 기반을 갖추고 소포장과 품질개선에 노력한 결과 쌀 유통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특히 1990년대 후반기 이후에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농산물 유통을 실현하기 위해 물류센터를 중심으로 농산물 유통의 새 지평을 열어나가고 있다. 농산물 물류센터는 소비자 · 유통업체 · 자영업자 모두 이용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도매+직판형농산물 시장이다.
1998년 1월 15일 우리나라 최초의 농산물 물류센터가 서울 양재동에 개장되었으며, 5월 1일에는 창동물류센터가 개장되어 1일 평균 이용고객수가 1만 명이 넘는 등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이와 함께 1998년 새정부 출범과 함께 농산물직거래 사업을 적극 추진하여 농민과 소비자 모두에게 경제적 혜택을 주고 있다. 직거래 사업으로 농민은 도매시장에 출하할 때 보다 평균 13.4%의 높은 수취가격을 받고, 소비자는 일반소매상보다 평균 18.2% 낮은 가격에 농산물을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3) 지도사업
농협은 조합원의 조합에 대한 참여의식을 높이고, 영농과 생활에 대한 방향 제시와 지원을 하고 있다. 농산물 생산 · 판매의 일관된 지도체계를 갖추고 우수농산물 생산지도, 환경농업 육성 그리고 새로운 영농기술 정보, 제공 등 영농지도에 힘쓰고 있다. 특히, IMF 충격으로 농업여건이 악화됨에 따라 농업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절약형 농업’을 적극 발굴하고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이 밖에도 농민조합원의 권익보호를 위한 농정활동을 수행하는 한편 우리 농업보호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조사연구 활동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