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협동조합은 1961년 농업인 조합원의 권익 증진과 국민경제 균형발전을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이다. 우리나라 농협은 종합 농협으로 판매 사업과 신용 사업을 겸영하고 있다. 대농업인 업무를 담당하는 지역 농·축협과 연합회인 중앙회로 이루어져 있다. 농·축협은 마을 단위의 이동조합에서 출발하여 영농 자재 공급, 농축산물 판매, 생활 물자 공급, 상호금융, 교육·지원을 담당하는 농협의 근간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중앙회는 농·축협의 사업을 전국 단위에서 조직하여 규모화하고 성장을 지원하는 한편, 시대 변화에 맞춰 농협의 발전을 이끌었다.
농업협동조합[약칭 농협]은 농업인의 자주적인 협동 조직이다.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르면, 농협은 농업인의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지위를 향상하고,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통하여 농업인의 삶의 질을 높이며,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1950년 농지개혁으로 지주-소작 관계가 해체되고 자영농 중심의 농업구조가 창출되었다. 농업생산과 유통에 필요한 시장이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농업생산은 지지부진하였고 농촌도 빈곤의 늪에 빠져 있었다. 농협은 자영농 체제의 유지 · 발전을 위해 필요한 농업인의 협동 조직으로 조속한 설립이 시대적 과제로 요청되었다. 자영농의 유지 발전과 함께 국가적 과제인 식량 부족, 농촌 빈곤 문제의 해결도 농협의 중요한 과제였다. 이를 위해 품목별 전문 농협의 형태를 가진 유럽과 미국의 농협과 달리 우리나라 농협은 경제 사업과 신용 사업을 겸영하는 종합 농협으로 설립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상부상조를 목적으로 하는 협동 조직이 있었다. 계(契), 향약(鄕約), 두레 등으로 길게는 삼국시대에 기원을 두기도 한다. 계는 계원의 상호부조 · 친목 · 통합 · 공동이익 등을 목적으로 일정한 규약을 만들고, 그에 따라 운영된다는 점에서 오늘날 협동조합과 가장 유사한 조직이다. 협동조합은 서구에 기원을 둔 근대적 기업조직이라는 점에서 전통사회의 협동 조직과 구별된다.
우리나라에 있어 근대적 협동조합의 시초는 한말인 1907년(순종 1) 5월에 공포된 「지방금융조합규칙」에 의거 설립된 지방금융조합이라 할 수 있다. 이후 농촌지역뿐만 아니라 도시지역에도 금융조합이 설립되어 전국적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금융조합은 광복 이후 농업은행이 설립될 때까지 농업금융을 거의 전담하였다. 그 밖에도 일제하에 조직된 관제 조합으로 산업조합 및 조선농회가 있다.
관제 협동조합과 달리 민간의 자생적인 협동조합 운동도 활발하였다. 일본 유학생 중심의 협동조합운동사(協同組合運動社), 천도교계의 조선농민사(朝鮮農民社), 기독교계의 농촌협동조합 등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말 탄압에 의해 해산 또는 소멸되고 말았다.
광복과 더불어 농업인과 각종 농업 단체에서는 농협 설립을 위한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마침내 1957년 「농업협동조합법」 및 「농업은행법」이 제정되었다. 1958년 농업금융을 전담하는 농업은행과 경제 사업을 담당하는 농협이 각각 발족하여 이원적 체계를 갖추었다.
당시 농협은 외형적으로 전국적 조직 체계를 갖추었으나 경영 기술의 미숙, 신용 사업의 배제와 분리에 따른 자금력 부족, 사업 기반의 취약 등으로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였다. 농지개혁으로 농업은 자영농 중심으로 재편되었으나 협동조합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함에 따라 농업생산의 발전이 지체되었으며, 농업인은 여전히 고리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지속되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정부는 농협을 재편성하여 농촌 경제의 향상을 도모한다는 방침 아래 그해 7월 새로운 「농업협동조합법」을 제정하였다. 새로운 농협은 기존의 농업은행과 구(舊) 농협을 통합하여 종합 농협으로 다시 출범하게 되었다.
1961년 8월 농협은 농업협동조합중앙회[약칭 중앙회], 시군조합[특수조합 포함], 이동조합의 3단계 계통 조직 체계를 갖추고 발족하였다. 발족 이래 농협은 이동조합의 육성을 위해 노력하였다. 조합업적경진대회, 새농민운동 등을 통해 협동 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이동조합 경영기반 강화를 위해 합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1969년부터 읍면 단위의 합병을 추진한 결과, 이동조합의 수는 1961년 2만 1042개에서 1972년 1,567개로 통합되었다. 1973년부터는 이동조합 대신 단위조합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이동조합의 사업 기반 확충을 위해 1969년부터 상호금융을 취급하기 시작하였다. 상호금융의 도입으로 농촌 고리 사채 문제가 해소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또한 1970년에는 농업인의 생필품 구입을 지원하기 위해 연쇄점 사업을 도입하였다. 1970년대에는 기존의 시군조합에서 취급해오던 비료 · 농사 자금 · 정책 판매 · 공제 등 4대 업무를 단위조합으로 이관하였다. 단위조합이 모든 대농업인 업무를 담당하여 농협의 근간 조직으로 성장하였다.
1980년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으로 시군조합이 중앙회의 지사무소로 흡수됨에 따라 농협의 계통 조직은 지역 농 · 축협과 중앙회의 2단계로 개편되었다. 한편, 축산업 부문은 축산업협동조합으로 별도 조직으로 분리되었다.
1987년 정치 · 경제 · 사회 전반의 민주화와 더불어 농협도 민주화의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1988년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으로 조합장과 중앙회장이 종전 임명제에서 각각 조합원과 조합장이 직접 선출하는 선출제로 전환되었다. 조합별로 조합원이 투표를 통해 조합장을 선출하였으며, 1990년에는 조합장의 직접 투표로 중앙회장이 선출되었다. 이와 함께 규제완화로 농협 경영의 자율성도 크게 제고되었다. 새롭게 선출된 조합장과 중앙회장은 농업인 실익 증진을 민주 농협의 새로운 경영 목표로 제시하였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농협은 민족 은행으로 부각되었다. 농협은 안정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금 모으기 운동 등을 통해 외환위기 극복을 지원하였다. 2000년에는 농협, 축협, 인삼협 중앙회가 하나로 통합되어 통합농협중앙회가 출범하였다. 통합농협 출범으로 사업 간 상호 보완이 이루어지고 사업 규모 확대로 시너지 효과가 제고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한편, 농축협의 건전 경영을 강화하기 위해 조합 구조개선 사업이 개시되었다.
2011년 「농업협동조합법」 개정에 따라 중앙회의 사업 구조 개편이 이루어졌다. 2012년 3월부로 1중앙회-2지주회사[농협경제지주 · NH농협금융지주] 체제가 출범하였다. 사업 구조 개편의 목적인 경제 사업 활성화를 위해 농협은 산지 유통 혁신, 도매 물류 인프라 구축, 소비지 유통망 확충 등에 역량을 집중해 왔다. 금융 사업에서는 종합 금융 그룹으로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증권업, 주1 투자 등이 확대되었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농업인과 국민의 피해가 증가하고 사회적 불안이 가중되었다. 농협은 농업인과 국민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농업인 판로 지원, 공적 마스크 지원, 취약계층 지원 등의 활동을 벌였다. 한편 급변하는 경영환경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농산물 유통 혁신, 범농협 디지털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2024년 8월 기준으로 조합원 수는 208만 명이다. 농 · 축협은 1,111개로 지역농협 916개, 지역축협 116개, 품목농협 45개, 품목축협 23개, 인삼협 11개로 이루어져 있다. 농협중앙회는 산하에 농협경제지주와 NH농협금융지주를 두고 있으며, 총 32개의 계열사를 운영 중이다.
농협은 구매 사업을 통해 농업인이 필요로 하는 영농 자재와 생활 물자를 공급한다. 농협은 1961년 설립 당초부터 비료, 농약, 농기계 등을 공급하여 농업생산 활동을 지원해 왔으며, 식량 증산 등 시대적 과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왔다. 오늘날 영농 자재 구매 사업은 사료, 종자, 유류 등 거의 모든 자재를 망라하고 있다. 또한 생필품 구입에 불리한 생활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농촌 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생활 물자도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농협의 구매 사업은 공동구매를 통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가격 협상력을 제고하여 조합원에게 최선의 가격으로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한다. 지역 농 · 축협은 조합원의 공동구매를 촉진하고, 중앙회는 계통 구매를 통해 지역 농 · 축협의 공동구매를 조성한다. 중앙회는 영농 자재의 원활한 공급과 가격 협상력 제고를 위해 남해화학, 농협케미컬, 농협사료 등 영농 자재 자회사를 운영해 왔다.
또한, 농협은 산지로부터 소비지에 이르기까지 각종 유통시설을 확보하여 농산물의 공동출하를 촉진하는 판매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산지 조직으로 1970년부터 동종 작물 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작목반을 운영하기 시작하였으며, 대상 품목도 식량작물 중심에서 경제작물[원예]로 확대하였다. 2001년부터는 산지 유통의 규모화를 위해 연합 마케팅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08년에는 작목반을 공선출하회로 전환하여 산지 조직화 · 규모화를 도모하였다.
1961년 종합 농협 발족 이후 농협은 정부 양곡 수매 및 방출 대행사업을 수행해 왔다. 1980년대까지 정부가 직접 수매하고, 농협은 수매 대금 지불과 결제 등을 담당하였다. 1990년대 들어 미곡종합처리장[RPC]이 설치되어 수집 기반을 갖추고 소포장과 품질개선을 위해 노력하여 쌀 유통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였다.
농협은 유통과정의 투명성 제고와 합리적인 가격 형성을 통해 농업인 수취 가격 향상을 위해 공판 사업을 해 왔다. 1961년 부산농산물공판장을 설치하였으며, 이는 최초로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공판장이 설치된 사례이다. 1974년에는 서울에 축산물공판장이 설치되었다. 1990년대에는 농산물물류센터[현 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를 설치하여 농산물 도매 유통에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2008년부터는 안성 등에 농식품물류센터를 설치하여 도매 물류 업무를 강화하였다.
농협은 당초 이동조합에 구판장을 설치해 생활 물품을 공급하였으나 사업은 부진하였다. 1970년 연쇄점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 생활 물자 사업이 활성화되었다. 1997년에는 생활물자판매점을 하나로마트로 개칭하였다. 중앙회는 체인 본부 시스템, 통합 물류 시스템 및 첨단 유통 정보 시스템을 구축하여 하나로마트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 외에도 농협은 식품 · 인삼 등 가공사업 육성을 통해 부가가치 증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협경제지주는 2012년 중앙회의 경제 사업 부문과 경제 관련 계열사를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2012년부터 2017년에 걸쳐 중앙회 경제 사업이 농협경제지주로 이관되었다. 농업 경제 사업과 축산 경제 사업을 전문화하고 농 · 축협의 경제 사업 지원을 수행하고 있다.
농협은 1969년 농촌 고리 사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호금융을 도입하였다. 농업인 스스로, 상호 간에 자금 융통을 촉진하여 고리 사채를 해결하려 한 것이다. 농협은 저축 운동을 통해 예금을 확보하는 한편, 대출을 통해 농업인에게 자금을 공급하였다. 1973년에는 중앙회에 상호금융특별회계를 설치하여 조합의 자금 수급을 지원하기 시작하였다. 당초 농협은 단순한 예금 및 대출상품을 제공하였지만 영역을 차츰 확대하여 지금은 은행 수준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960년까지만 해도 농가는 일반적으로 사금융에 의존하고 있었다. 농가는 농사와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고리채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 농촌 근대화가 지체되고 있었다. 당시 농가 사채의 70%가량이 월 5% 이상의 고리채였다. 상호금융은 농가를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시켜 농촌 고리채 문제를 해결하였다. 농업인에게 안정된 저축 수단을 제공하는 한편, 다양한 경로를 통해 조달한 자금을 농업인에게 대출로 공급하였다. 그 결과 1990년대 농가의 사채 의존도는 5% 수준으로 떨어졌다.
1961년 농업은행을 흡수한 중앙회는 은행 업무를 취급해 왔다. 중앙회는 도시에서 자금을 수집하여 농촌에 매개하는 역할을 하여 농촌 금융 발전을 지원하였다. 조달한 자금을 농업인과 지역 농 · 축협 등에 대출할 뿐만 아니라 농협의 경제 사업 지원에 활용하였다. 1984년에는 중앙회 전 점포의 온라인망을 구축하는 한편, 종합 농협의 특색을 살린 다양한 금융 상품을 개발해 공급하였다. 1983년에는 카드 사업을 시작하였다. 중앙회의 은행 사업은 2012년 사업 구조 개편으로 NH농협은행으로 새롭게 출범하였다.
NH농협금융지주는 2012년 중앙회 사업 구조 개편에 따라 분리된 금융 자회사를 기반으로 설립되었다. 2014년에는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여 NH투자증권으로 편입하였다. 2018년에는 NH농협리츠운용을 설립하는 등 사업다각화를 추진하였다. NH농협금융지주는 종합 금융 그룹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해외 진출 등 수익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농협은 경영체이자 운동체로 농업인의 경제적 · 사회적 · 문화적 지위 향상을 위해 경제, 금융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 · 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영농지도 및 생활지도, 복지 지원, 농 · 축협 지원, 교육 · 홍보 · 문화 · 조사 연구 · 국제 협력 ·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있다.
영농지도에서는 1965년 새농민운동을 개시하여 선도 농업인 육성을 시작하였으며, 1970년대에는 새마을운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1990년대에는 신토불이운동, 2000년대에는 농촌사랑운동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농촌 인력 지원을 위해 인력 중개 사업, 미래 영농 세대 육성을 위한 청년농 · 창업농 지원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여성농업인과 다문화가정도 지원하는 한편, 다양한 복지시설 및 의료지원, 장학사업 등도 펼치고 있다.
중앙회는 농 · 축협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수행해 왔으며, 오늘날에는 농축협 균형발전, 강소 농협 육성 등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협동조합 정체성 강화를 위한 조합원 교육 및 임직원 교육에 힘쓰는 한편, 조사 연구 활동을 통해 사업 전반을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