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어역관(倭語譯官) 홍우재(洪禹載)가 통신사의 일행으로, 1682년(숙종 8)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의 사행을 기록한 것이다. 이 사행에 정사 윤지완(尹趾完), 부사 이언강(李彦綱), 종사관 박경후(朴慶後), 압물통사(押物通事) 김지남(金指南) 등이 동행했다. 일본 기행 기록을 집대성한 『해행총재(海行摠載)』제22책에 수록되어 있다.
당시 사행은 1681년(숙종 7)에 도쿠가와 이에쓰나[德川家綱]가 죽고 도쿠가와 쓰나요시[德川綱吉]가 습직된 것을 축하하기 위한 것으로, 관례에 따라 경조사행으로 파견되었다.
그 밖의 부차적인 임무로는 규정된 이외의 왜사(倭使)를 보내지 말 것, 표류인 쇄환, 두 나라 사이의 약조를 준수할 것, 왜관에서의 물물교역 문제점 등에 관해 일본 측과 의논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일본 측으로부터 별도의 사자는 보내지 않겠으며, 표류인 호송은 경중을 가려 시행하고, 대관(代官)의 수를 반으로 줄이겠다는 회답을 받았다.
이 책에 나타난 저자의 임무는 다른 두 명의 당상역관(堂上譯官)과 더불어 삼사신(三使臣)과 일본 고관과의 통역, 사신의 임무 수행에 필요한 제반 잡사(雜事)의 총괄, 교역이나 의전 등에 있어서 사전 실무 교섭, 일본 사정에 어두운 사신들에 대한 자문, 일본 국왕 이하 각처에 보내는 예물의 마련과 포장, 그리고 사적으로 종사관이 사행을 단속하고 비위를 검속하는 일을 보좌하는 것 등이었다.
한편 이 책에 대마도주의 내방에 대한 영접례 절차, 에도[江戶]에서 사신이 관백(關白)의 사절과 회담할 때의 복잡한 예절 절차, 왜관을 중심으로 한 양국 사이의 교역에 대한 논의와 그 결정된 내용 등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풍속·인물·풍물 등 당시 일본의 습속 및 정세를 간략하게 싣고 있는데, 이와 같은 것은 이 일기의 대부분의 내용이며 이 책의 가장 큰 가치이기도 하다.
이밖에 사행의 일원이었던 김지남 또한 『동사일록(東槎日錄)』을 썼는데, 그 내용은 『동사록』과 거의 비슷하나 체재와 서술에서는 앞선다.
다른 사행기록에 비해 양이 적고 내용도 소략하다. 개개의 사실이 연관성 없이 산만하게 기재되어 하나의 사건을 계기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영물시(詠物詩)와 같은 문학적인 내용도 거의 없다. 그러나 사신을 대신해 왜인과 직접 실무 교섭을 하면서 뒤에 올 사행을 염두에 두고 실무적인 것을 기록했기 때문에 양국 사이의 외교 통상 관계를 살피는 데 가치가 크다.